
그 시절을 회상하며(가고파의 도시, 마산에서의 추억), 2~1
마산(馬山)을 가고파의 도시라고 부른다. 가보고 싶어서 가고파고, <가곡 가고파>의 작사자(作詞者)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시인의 고향이기에 가고파의 도시(都市)다. 지금도 불종 거리(마산의 중심거리)에는 가을이면 국화꽃으로 거리를 수놓는 <가고파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금 가고파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애잔함이 흘러나온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작곡가 김동진(金東振, 1913~2009)의 고향에서는 이런 축제(祝祭)가 있는지 궁금하다. 없다면 이 노래를 소재로 멋진 축제 하나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나는 1989년 4월 28일 자로, 차장으로 승진하여, 3.15 부정선거의 성지(聖地)인, 경남 마산에 소재한 <의창군지부, 현, 농협은행 마산지점)>로 발령받아서 5월 1일에 부임(赴任)하였다. 우리 사무실에는 지부장 밑으로 부지부장(副支部長) 한 분과 차장(次長) 네 분이 있었다.
우리의 지부장(支部長, 1941년생)님은 고향이 밀양(密陽)이고 부산고교와 서울대학교를 나오셨으며, 농업(農業) 개론(槪論)이란 농협 내부 승진 고시(考試) 대비용 책도 펴내신 학구적(學究的)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강단(剛斷) 있는 매우 유능(有能)한 분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불·선의 동양 종교는 물론이고, 기독교(基督敎)·천주교(天主敎)·회교(回敎) 등 서양 종교에도 두루 능통하며, 인체 구조, 질병 원인, 음식 궁합, 사상 체질 등 인간 관련 다(多) 분야에도 통달한 그야말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한 태양인의 전형(典型) 같은 분이었다.
그분과 2년을 함께 근무하는 동안에, 일화(逸話)가 너무도 많은데, 그중 두 가지만 소개(紹介)한다. 술(酒)과 잡기(雜技) 이야기다. 그분은 담배는 못해도, 술(酒)은 무척 좋아했다. 좋아할 정도(程度)가 아니라 술이 엄청나게 강(强)했다. 그야말로 두주불사(斗酒不辭) 형이었다.
술을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가는 그런 스타일의 인물(人物)이었다. 즉,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능한 분인데, 색(色)은 체험(體驗)해 보지는 못해서 자신(自信)할 수는 없지만, 주(酒)와 잡기(雜技)만은 특출(特出)한 분이었다.
그래서 단골 술집도 서너 곳이나 되었고, 보통 2~3차 정도는 가야 직성(直省)이 풀리는 분이었다. 술뿐만 아니라 바둑은 이미 아마 5단으로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하였으며, 골프도 고스톱도 모두 프로 수준으로 참으로 다재다능(多才多能)한 분이셨다.
고객(顧客)이나 직원들과 고스톱을 치면 돈은 거의 그분 것이었다. 그만큼 승부욕(勝負慾)도 강하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 욕심(慾心)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다니는 사무소마다 우수한 업적을 이루었고, 그래서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훈장(勳章)도 받으셨다.
가끔은 고객(顧客)을 모시고 방석(方席)집에도 가지만, 우리 직원들끼리 마실 때는 언제나 실빗(實費)집을 이용했다. 마산(馬山) 창동(倉洞)의 실빗집은 아주 독특(獨特)하였다. 맥주(麥酒)만 시키면 안주는 무료(無料)였다. 그 대신(代身)에 맥줏(麥酒)값이 좀 비싸기는 하였다.
어쩌다가 접대부(接待婦)들이 있는 방석(方席)집에 가면, 그분은 다라이(대야) 주(酒?)를 직접 제조(製造)하여 마셨다. 다라이 주(酒)라는 것은 소주(燒酒)나 맥주(麥酒) 또는 양주(洋酒) 등을 한데 섞어서 마시는 술로서 일종의 폭탄주(爆彈酒)인데,
그런데 특이한 점은 막판에 가서는 술상에 남아있는 모든 종류(種類)의 술과 심지어 안주(按酒)까지도 한 대야에 담아 국자로 떠서 마시는 술을 말한다. 아마 이런 술 조제(調劑)는 예전에 본 일이 없어서, 우리 지부장님의 특허권(特許權)이라고 스스로 자랑(?)할 정도였다.
왜 그렇게 마실까? 우리가 물어보면 첫째로는 술을 공평(公平)하게 마시자는 의미(意味)와 둘째로는 접대부(接待婦)들이 술은 안 마시고, 매상(賣上)만 올리기 위하여 안주(按酒)만 먹으니 이를 방지(防止)하자는 의견(意見)이었다.
당신(當身)도 한잔 마시고 나도 한 잔 마시고 이렇게 사이좋게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그 아까운 돈도 아끼면서, 마셔도 같이 마시고 취해도 같이 취하자는 술책(術策?)이라고 우리의 지부장님은 종종 실토(實吐)하셨다.
물론 술이 세다는 것을 과시(誇示)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으흐흐 미루어 짐작(斟酌)한다. 나도 술에는 2등 가라면 서러운 사람인데 그분은 나보다 더 강(强)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그분보다 더 센 분을 나는 만나보지 못했다.
한번은 실빗(實費)집에서 우리 사무소의 최고(VIP) 고객(顧客) 두 분을 모시고 지부장님과 차장(次長) 세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고객(顧客)들은 취해서 먼저 가고, 우리 네 사람이 남아서 마무리로 딱 한 잔씩만 더 마시자고 했는데, 말만 그렇지 실은 모두 들 많이도 취했다.
이때 지부장님이 작은 횡포(橫暴?)를 부렸다는데 무슨 횡폰지 나는 기억에 없다만, 횡포(橫暴)에 당한 차장(次長) 한 분이 술김에 ‘지부장(支部長)이면 다냐? 하면서 <좆도 씨~발>’이라는 욕(辱)이 입에서 튀어나온 모양이다.
그랬더니 우리의 지부장님이 노발대발(怒發大發)하시면서 일어서서 발길로 테이블을 차버렸다. 그 바람에 그분과 제일 가까이 앉아 있던 나만 탁자(卓子)에 밀쳐져서 허리를 다쳤다. 허리가 뜨끔하더니 움직이질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마산(馬山)으로 미쳐 이사(移徙)도 하기 전으로 부산(釜山)에서 출퇴근(出退勤)하고 있었다. 그날 밤 움직일 수가 없어서 지부장님 사택(舍宅)에서 잠을 잤고, 아픈 허리는 계속(繼續)되어 수일 동안 출근(出勤)을 못 한 일이 있었다. 아하하 괴로운 신세(身世)로다.
나는 우리의 지부장님과는 달리 술만 마시면 줄담배로 건강(健康) 관리가 엉망이었다. 그 결과로 은퇴 후인 2016년에 뇌출혈(腦出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한의원의 물리 치료와 매일 오전 <스로우(Slow) 조깅(Jogging)>으로 차츰차츰 좋아지고 있다. 2~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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