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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221

서평

by 웅석봉1 2026. 4. 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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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1853~1919), 스페인 국민화가.

 

소설 김삿갓221

 

수목(樹木)이 무성(茂盛)한 탓인지 노루며, 토끼며, 다람쥐며, 살쾡이 같은 짐승들이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맘대로 뛰어다니고 있었고, 꿩이나 꾀꼬리나 산비둘기 같은 날짐승들도 제멋대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는 호랑이()도 없지 않을 텐데, 내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호랑이() 밥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김삿갓은 그런 공포감(恐怖感)도 노상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쪽에서 해치려고 하지 않으면 동물(動物)이 사람에게 먼저 덤벼드는 법()은 없기에 김삿갓은 자기 자신(自身)도 동물이 되어 버린 심정(心情)으로 마냥 한가롭게 걸어 나갔다.

 

10리가 넘는 험()한 고개 하나를 넘어오니, 저 멀리 산기슭에 초가집 두 채()가 보인다. 잠자리를 구하기에는 아직 시간(時間)이 일렀지만, 인가(人家)를 또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김삿갓은 시간이, 이른 대로 오늘 밤은 초가집(草家)에서 자고(宿) 갈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산(), 내려와 보니 두 채의 초가집(草家)이 조그만 개울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마주 바라보는 위치(位置)에 있었다.

 

그런데 초가집(草家)의 주인(主人)들인 듯싶은 두 명의 중년(中年) 사내들이 개울가에 마주 서서, 무엇인가 말다툼(言爭),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다투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은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와도 아랑곳 아니하고, 언성(言聲)을 높여 가며 말다툼(言爭)만 계속하고 있었다.

 

-이 깊은 산중에 단 두() ()만이 살고 있으면서,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갈 생각은 안 하고 어째서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人間)이란 그렇게도 우매(愚昧)한 동물(動物)인가 싶어, 김삿갓은 잠시 환멸(幻滅)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싸움을 말리려고 짐짓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보시오, 두 양반(兩班)! 내 말 좀 들어 보소, 이 깊은 산중(山中)에 단 두 집만이 살고 있으면서, 무슨 할 일이 없어 언쟁(言爭), 하고 계시오, 무엇 때문에 말다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말다툼(言爭)은 이제 그만들 하시오,>

 

그러자 동()쪽 개울가의 사내가 김삿갓 앞으로 다가오며 이렇게 호소(呼訴)한다.

 

<뉘신지는, 모르겠소만는, 마침 잘 오셨소이다, 우리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저 친구가 황소(黃牛)를 기르고 있기에, 나도 소를 길러 보았으면 싶어 얼마 전에 넉 냥 일곱 돈을 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사다 기르고 있었다오, 그런데 바로 오늘 아침에 저 친구네 황소(黃牛)란 놈이 우리 집의 총재산(總財産)인 송아지를 뿔()로 받아서 죽여 버렸단 말이오, 그래서 저 친구더러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 달라고 하니까, 저 친구는 한 푼도 물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경우(境遇)에 벗어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화()가 동()할 밖에 없지 않소?>

 

그러자 이번에는 서(西)쪽 개울가(川邊)의 사내가 김삿갓 앞으로 다가오며 이렇게 반론(反論)을 제기(提起)해 오는 것이 아닌가.

 

<여보세요, 한쪽 말만 들어서는 송사(訟事)를 못 하는 법()이오, 내 말도 좀 들어 보시오, 저 친구는 우리 황소(黃牛)가 자기네 송아지(幼牛)를 뿔로 받아 죽였다고 하면서 나더러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내라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우리 집 황소(黃牛)를 시켜서 송아지를 죽게 만든 것도, 아니~거든요, 평소(平素)에는 두 마리의 소들이 풀밭(草原)에서 사뭇 정답게 풀을 뜯어 먹곤 했어요, 그러데, 오늘 아침에는 무슨 의견(意見) 충동(衝突)이 생긴 모양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들끼리 싸우다가 일어난 불상사(不祥事)인데, 나더러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내라고 하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요, 게다가 나는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 줄 만한 돈도 없어요,>

 

좌우편(左右便) 얘기를 들어 보면 모두가 그럴듯하였다. 무릇 싸움이란 피차간(彼此間)에 명분(名分)이 없고서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김삿갓은 두 사람의 사연(事緣)을 들어 보고 판가름이 매우 난처(難處)하였다.

-너의 집 황소(黃牛)가 우리 집 송아지를 죽였으니,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내라-는 주장에는 그 나름대로 명분(名分)이 뚜렷하였다.

 

그러나 소들끼리 싸우다가 죽었는데, 내가 왜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 주겠느냐고 고집(固執)을 부리는 데도 노상 일이(一理)가 없지는 않았다. 싸움은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은 이런 경우(境遇)를 가상(假想)해 보았다.

가령 어떤 집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남의 집 장독을 깨뜨렸다고 하자, 그 경우에는 아이네 집에서 장독 값을 갚아 줘야 하는 것은 상식(常識)에 속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논리(論理)로 따지고 보면 황소(黃牛) 주인이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 줘야 옳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황소(黃牛)의 주인으로 하여금 송아지(幼牛) 값을 물어 주게 하고 나면, 그 후()의 결과(結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어보나 마나 그런 일이 있고 나면 두 사람은 한평생(限平生) 원수(怨讎)가 되어 영원(永遠)히 으르렁거리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228~231-계속-(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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