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김삿갓> 218

서평

by 웅석봉1 2026. 3. 30. 12:09

본문

칼 라르손(1853~1919), 스페인 국민화가.

 

소설 김삿갓218

 

김삿갓은 노인(老人)의 말에서 무엇인가를 크게 깨달은(大覺) 느낌이었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더니, 노인(老人)의 생활(生活)이야말로 여천 동락(與天同樂)하는 것이 분명(分明)했기 때문이었다.

 

해골(骸骨) 노인(老人)은 자기(自己) 말을 계속(繼續)한다.

 

<그렇지! 천지자연(天地自然)과 운행(運行)을 같이 하는 즐거움! 그런 즐거움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야, 산에는 계절(季節) 따라 오만가지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모든 열매는 계절(季節)의 정수(精髓)가 응결된 정과(精果)’라는 사실(事實)을 알아야 해요, 엄밀(嚴密)하게 따지고 보면 사람도 대자연(大自然)의 일부분(一部分)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야, 대자연(大自然)의 일부분(一部分)인 사람은 마땅히 대자연(大自然)의 운행(運行)과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니겠어?>

 

김삿갓은 노인(老人)의 말을 들을수록 가슴 벅찬 감격(感激)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김삿갓 자신(自身)이 구름처럼 한평생(限平生)을 방랑(放浪) 생활(生活)로 보내기로 결심(決心)한 것은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을 즐기고 물()을 즐기려면 한 조각 구름()처럼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줄로 김삿갓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只今) 눈앞에 앉아 있는 해골(骸骨) 노인(老人)의 생활(生活) 태도(態度)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90여 년간(年間)이나 한곳에 머물러 살아오면서도 언제든지 천지자연(天地自然)과 호흡(呼吸)을 같이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오늘 밤에는 노인장(老人丈) 말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음에 한 조각(雕刻)의 시름도 없이, 항상(恒常) 천지자연(天地自然)과 호흡(呼吸)을 같이하며 살아오신다()는 말씀은 정말로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김삿갓이 머리()를 수그려 보이자, 노인(老人)은 손을 내저으며,

<먼 길 오시느라고 고단하실 텐데 늙은() 것이 괜히 쓸데없는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아서 미안(未安)하오, 얘기는 그만하고 이젠 잠이나 잡시다,>

 

세 사람이 잠자리에 눕기는 했으나, 방이 워낙 좁아 김삿갓은 다리()를 뻗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해골(骸骨) 내외(內外)는 자리에 눕자,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기 시작한다.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으면 잠()을 그렇게도 쉽게 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잠()을 그처럼 잘 자기 때문에 장수(長壽)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다리()를 꼬부리고 누운 탓인지, ()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더구나 아까 방() 안으로 들어설 때 처마 끝에 이마빼기를 부딪쳐 아직도 이마에 혹이 달려 있는데, 지금은 다리()까지 꼬부리고 누웠으니 잠(), 쉽게 올 턱이 없었다.

 

평소(平素)에는 남에게 허리 굽히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했던 김삿갓이었건만, 이날 밤()만은 방()이 하도 좁아 허리를 꼬부리고 눕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삿갓은 허리를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운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이렇게 읊었다.

 

곡목위연첨착진(曲木爲椽簷着塵), 기간여두근용신(其間如斗僅容身),

평생불욕장요굴(平生不欲長腰屈), 차야난모일각신(此夜難謀一脚伸),

 

*해석하면,

 

서까래는 굽고 처마는 땅에 닿고, 방은 좁아 겨우 몸을 넣었소,

허리 굽히기를 평생 싫어했건만, 이 밤만은 다리를 펼 수가 없구나.

 

익살맞은 시() 한 수()를 읊조리며 오랫동안 궁싯거리다가 그런대로 잠()이 들었다. ()이 고단한지라 다리()를 꼬부리고도 잠()을 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해골(骸骨) 내외(內外)는 어디로 갔는지 방()이 텅 비어 있었다. 늙은이들은 새벽잠이 없어서 소풍(消風)이라도 나갔는가 싶었다.

 

김삿갓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방안(房內)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주인(主人) 할머니는 부엌에서 조반(朝飯)을 짓고 있는지 쥐()구멍 사이로 연기(煙氣)가 배어 나오고 있고, ()에는 종이를 몇십 년 전()에 발랐는지 아침 해()에 비친 창호지(窓戶紙)가 새까맣기만 하였다. 이윽고 해골(骸骨) 노인(老人)이 방안(房內)에 들어서며 말한다.

 

<왜 좀 더 자지(宿) 않고 벌써 일어났는가?>

<많이 잤습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어젯밤에 비()가 왔길래 호박을 몇 포기 심고() 들어오는 길이야,>

 

마침, 그때 할머니가 조반상(朝飯床)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을 보니, 꽁보리밥에 호박국과 감자찌개뿐이었다. 김삿갓은 조반(朝飯) ()에 해골(骸骨) 내외(內外)에게 작별(作別) 인사(人事)를 올리고 또다시 방랑(放浪)의 길이 오르며 어젯밤의 즉흥시(卽興詩)에 계속하여 다음과 같은 익살맞은 시() 한 수()를 또 읊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220~222-계속-(218),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김삿갓> 220  (1) 2026.04.01
<소설 김삿갓> 219  (1) 2026.03.31
<소설 김삿갓> 217  (1) 2026.03.29
<소설 김삿갓> 216  (1) 2026.03.28
<소설 김삿갓> 215  (1) 2026.03.27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