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9
서혈연통혼사칠(鼠穴煙通渾似漆), 봉창모격역무신(蓬窓茅隔亦無晨),
수연면득의관습(雖然免得衣冠濕), 임별위근사주인(臨別慰懃謝主人),
*해석하면,
쥐구멍 연기로 방안은 칠흑 같은데, 창호지마저 어두워 새벽을 모르겠네.
그래도 비를 피해 옷을 안 적셨기에, 떠나는 인사만은 정중하게 올렸소.
밖으로 나서니 날씨는 쾌청(快晴)하였다.
-금강산(金剛山)은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을까?-
김삿갓은 금강산(金剛山)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마냥 가볍기만 하였다.
금강산(金剛山)! 금강산(金剛山)을 삼면(三面)으로 에워싸고 있는 회양(淮陽)· 통천(通川)· 고성(高城)의 세 고을은 거대한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산세(山勢)가 험준(險峻)하기 이를 데 없는 지대(地帶)다.
따라서 금강산(金剛山)의 서(西)· 남(南)· 북(北), 삼면(三面)은 태산준령(泰山峻嶺)으로 병풍(屛風)처럼 둘러싸였고, 동쪽만이 바다로 활짝 틔어 있어서, 동해(東海)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위치(位置)에 천하의 절경(絶境)을 이루고 있는 산천경개(山川景槪)가 바로 금강산인 것이다.
김삿갓은 금강산(金剛山)으로 가기 위해 회양(淮陽) 땅에서 통천(通川) 땅으로 접어들었다. 가면 갈수록 길은 험(險)하고 산(山)은 높아만 갔다.
산(山)이 얼마나 높고(高) 험(險)한지 구름(雲)이 산허리에서 감돌고, 솔개나 독수리 같은 날짐승들도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으로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산(山)이 높으면 기후(氣候)도 찬(冷) 법이어서, 저 멀리 산밑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滿發)해 있건만, 지금 김삿갓이 걸어오고 있는 산(山) 위에는 골짜기마다 잔설(殘雪)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얼마를 오다 보니 능선(稜線)에 산성(山城)이 쌓여 있다. 성문(城門) 남(南)쪽은 평지(平地)이건만 성문(城門) 북(北)쪽은 수백 척 높이의 천야만야(千耶萬耶)한 낭떠러지로 되어 있었다.
-이 험준(險峻)한 산중(山中)에 웬 성(城)이 있을까, 보나 마나 그 옛날 외침(外侵)을 막기 위해 여기에 성(城)을 쌓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김삿갓은 다리도 쉬어 갈 겸, 쓰러져 가는 성루(城樓)에 올라앉아 사방(四方)을 유연히 굽어살펴보았다. 천산(千山) 만봉(萬峯)이 한눈에 굽어 보일 뿐만 아니라, 구름도 관문(關門)을 넘지 못해 산허리에서 감돌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딜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사람을 만나야 물어 볼 게 아닌가, 금강산(金剛山)이 얼마나 좋은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데는 이곳보다도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눈앞에 들어오는 천산만봉(千山萬峯)을 오래도록 굽어보며 앉아 있노라니까, 마침 우거진 숲속에서 나무꾼 하나가 나온다.
<이보시오, 말 좀 물어, 봅시다, 이 고개(嶺) 이름이 뭐요?>
나무꾼은 대답한다.
<이 고개는 철령(鐵嶺) 고개라오,>
<엣? 이 고개가 철령(鐵嶺) 고개라~구~요?>
김삿갓은 철령(鐵嶺) 고개라는 소리에 까무러질 듯이 놀랐다. 일찍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공신(功臣)이었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북청(北靑)으로 정배(定配)를 가다가 철령(鐵嶺) 고개 위에서,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하는 시조(時調)를 한 수 읊은 일이 있는데, 그 철령(鐵嶺)이 바로 이 고개인 줄은 전연 몰랐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지난날 철령(鐵嶺) 고개에 대한 사기(史記)를 읽어 본 적은 있어도 현지(現地)에 직접 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감회(感懷)가 자못 절실하였다.
일찍이 고려(高麗) 때의 문인(文人)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철령기(鐵嶺記)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철령은 우리나라의 동쪽에 있는 요해지(要害地)로서, 이른바 한 사람이 관(關)을 지키면 만(萬) 명(名)의 군사(軍事)가 덤벼 와도 깨뜨리지 못하는 곳이다. 지원(至元) 경인년(庚寅年)에 만적(蠻賊) 내안(乃顔)의 무리가 침략해 온다는 소식(消息)이 들리자, 조정에서는 나유(羅裕)라는 장수(將帥)로 하여금 철령관(鐵嶺關)에서 만적(蠻賊)을 격퇴(擊退)시키게 하였다. 그런데 나유(羅裕)는 워낙 천하(天下)에 비겁(卑怯)한 장수인지라, 만적(蠻賊)이 습격해 오자 격퇴 시킬 생각은 안 하고 숫제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선량한 백성(百姓)들이 심한 박해(迫害)를 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의 인심이 크게 흉흉(凶凶)했던 일이 있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22쪽~226쪽-계속-(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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