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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220

서평

by 웅석봉1 2026. 4. 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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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1853~1919), 스페인 국민화가.

 

소설 김삿갓220

 

지난날 김삿갓은 그와 같은 사기(史記)를 읽어 보다가, 불현듯 자기 할아버지(祖父)의 일이 머리에 떠올라 혼자 얼굴을 붉힌 일이 있었다.

 

왜냐하면,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선천(宣川) 방어사(防禦使) 김익순(金益淳)도 홍경래(洪景來, 1771~1812) 난에 겁()을 먹고 역도(逆徒)에게 선천성(宣川城)을 어이없이 내주었는데, 나유(羅裕)가 만적(蠻敵)에게 겁()을 먹고 철령관(鐵嶺關)에서 도망(逃亡)쳐 버린 사실(事實)은 그와 너무도 흡사(恰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要塞)라는 말은 한낱 무용(無用)의 명칭(名稱)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철령관(鐵嶺關)이 제아무리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조건(條件)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장수(將帥)의 정신(精神)이 나유(羅裕)처럼 썩어 빠졌다면 아무 효력(效力)을 발휘(發揮)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령관(鐵嶺關)을 버리고 도망(逃亡)을 가버린 나유(羅裕)라는 장수(將帥)에게 비기면, 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충성심(忠誠心)은 너무도 빛나 보였다.

 

이항복은 광해군(光海君, 1575~1641)에게 쫓게 북청(北靑)으로 정배(定配)를 가면서도, 철령(鐵嶺) 고개 위에서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시조(時調)로 읊었으니, 생사(生死)와 영고(榮枯)를 초월(超越)한 그 충성심(忠誠心)이야말로 만고(萬古)에 빛나는 고매(高禖)한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김삿갓이 그와 같은 감회(感懷)에 잠겨 있는데 나무꾼이 말을 걸어 온다.

<보아하매 댁은 여기가 초행(初行)인 모양인데, 어디를 가노라고 이런 험()한 곳을 찾아오셨소?>

 

김삿갓은 황당(荒唐)이 자기 정신(精神)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대답(對答)하였다.

<내가 아직 금강산(金剛山)을 못 보았기에,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가는 길이라오>

 

나무꾼은 그 소리를 듣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다.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가는 길이라구요? 그렇다면 길을 잘못 드셨소이다>

 

<? 길을 잘못 들다뇨?>

<금강산(金剛山)에 가려면 단발령(斷髮嶺)을 넘어가야 할 일이지, 어째서 철령(鐵嶺)으로 오셨느냐 말이오>

 

김삿갓은 어이가 없어 실망(失望)하는 빛을 보이자, 나무꾼이 다시 말한다.

 

<금강산(金剛山)과 철령(鐵嶺)은 방향(方向)이 아주 다르오, 회양(淮陽)에서 금강산(金剛山)으로 가려면 동쪽으로 단발령(斷髮嶺)을 넘어가야 하오, 철령(鐵嶺)은 회양(淮陽)에서는 북쪽에 해당하는 곳이라오,>

 

<그러면 일단(一旦) 회양(淮陽)으로 되돌아가 가지고, 단발령(斷髮嶺)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회양(淮陽)까지 되돌아갈 것은 없지요, 여기서 단발령(斷髮嶺)으로 가는 길도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단발령(斷髮嶺)으로 직접 가려면 길이 몹시 험()하다오, 그것만은 알고 가셔야 하오,>

 

<()만 있다면 험()하다고 못 갈 것은 없지 않을까요,>

<이러나저러나 길()을 잘못 들어 쓸데없는 고생(苦生)을 하게 되셨소, 백 리 이상을 돌아가는 셈이니까요,>

 

<내가 워낙 날을 받아 놓고 다니는 길()은 아니니까, ()하면 험()한 대로, 직접 가기로 하겠소이다, 도중에 술집(酒家)이나 절간(寺刹) 같은 곳이 있을까요?>

 

그러나 나무꾼은 고개를 힘차게 흔든다.

<이 깊은 산중에 술집(酒家)이 무슨 술집(酒家)이오, 여기서 단발령(斷髮嶺)으로 가는 도중에는 절(寺刹)도 없다오,>

 

<술집(酒家)도 절간(寺刹)도 없다면 어디서 자지요?>

 

<여기서 단발령(斷髮嶺)으로 직접 가는 길은 120리가량 되오, 그러나 길이 워낙 험()해 사흘이나 나흘은 잡아야 할 거요, 도중에 인가(人家)는 간간이 있으니까, 잠은 인가(人家)에서 자고 가면 되지요>

 

<자세하게 알려 주어서 고맙소이다, 그러면 단발령(斷髮嶺)으로 직접 가보겠소이다>

 

김삿갓은 나무꾼과 작별(作別)하고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길을 잘못 들어 고생(苦生)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든 덕택에 생각조차, 못했던 철령(鐵嶺)을 구경하게 된 것만은 무엇보다도 다행(多幸)스럽게 여겨졌다.

 

나무꾼이 말한 대로 길()은 과연 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말이 길()일 뿐이지, 나무꾼들이 다니는 허리띠 같은 오솔길뿐인데, 그나마 좌우(左右)에 칡덩굴이 우거져 있어서 발을 옮겨 놓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226~228-계속-(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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