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6
김삿갓은 몹시 시장하던 판인지라 호박죽과 삶은 감자가 어떤 진수성찬(珍羞盛饌)보다도 입(口)에 달았다. 늙은 영감(令監)님은 김삿갓이 호박죽을 달게 먹는 것을 흡족(洽足)스럽게 바라보면서.
<우리 두 늙은이가 사람(人) 구경을 하기는 오늘이 삼(三) 년(年) 만이오,……, 할망구! 매(鷶)사냥꾼들이 길을 잘못 들어 우리 집에서 자고(宿) 간 것이 아마 삼(三) 년(年) 전(前)의 일이었지?>
그러자 할망구가 영감(令監)을 나무란다.
<아이참, 영감(令監)은 망령(亡靈)이 드셨나 보구~료, 사냥꾼들이 다녀간 것은 영감(令監)님이 아흔(九十) 살(世) 나던 해(日)의 생일(生日)날의 일이었다~우, 그러니까 삼(三) 년(年) 전(前)이 아니라, 오(五) 년(年) 전(前)의 일이라~우,>
그러고 보면 두 늙은이는 백(百) 살 고개를 바로 눈(目)앞에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分明)하였다. 김삿갓은 저녁(夕食)상을 물리고 나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두 분은 언제부터 이 산골(山谷)에 살고 계시옵니까?>
영감(令監)이 대답한다.
<언제부터 살기는 ……, 나는 이 집(家)에서 나서(生), 오늘날까지 줄곧 이 집(家)에서 살아오고 있는걸,>
<그러면 선조(先祖) 때부터 이 산골(山谷)에서 살아오신다는 말씀입니까?>
<나의 칠(七) 대조(代祖)께서 시끄러운 세상(世上)이 싫다고 하시면서 이 산골(山谷)로 들어오셨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가문(家門)은 적어도 백(百) 년(年)은 훌쩍 넘게(以上) 여기서 살(生)아오는 셈이지,>
<그러면 이 부근(附近)에는 친척(親戚)들도 많이 살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웬걸, 젊은 사람들은 산골(山谷) 살림이 싫다고 저마다 번화(繁華)한 고장으로 이사(移徙)를 가버려서 지금은 우리 두 늙은이만이 남아 있다오,>
<그러면 자제(子弟)분들은? ……,>
자제(子弟)분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노파(老婆)가 대답(對答)을 가로막고 나선다.
<우리 두 늙은이 사이에는 아들딸이 다섯(五)이나 있다오, 아들(子)이 셋(三), 딸(女)이 둘(二)이지요,>
<오(五) 남매(男妹)를 두셨다니 그야말로 복(多福)을 많이 타고나셨습니다, 딸(女) 두 분은 출가(出嫁)하셨을 것이고, 아드님(子) 세(三) 분은 지금 어디 살고 있습니까?>
<아들(子)이 셋(三)이면 무엇하오, 세(三) 명(名)이 모두 중(僧)이 되어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 버린걸>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아니, 아들 삼(三) 형제(兄弟)가 모두 중(僧)이 되어 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가 버렸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니까요, 큰 아이는 열두 살 때에 장안사(長安寺)에 있다는 노승(老僧)이 데려갔고, 둘째와 셋째는 형(兄)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더니, 급기야 제 발로 금강산(金剛山)에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고 보면 중(僧)이 되는 것도 팔자(八字)인가 봅니다,>
이번에는 영감(令監)님이 마누라의 뒤를 이어 말(言)을 계속한다.
<젊은이도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는지 모르겠소~마는, 강원도(江原道)에는 옛날부터 전(傳)해 오는 속담(俗談)이 있다오, ‘강원도(江原道) 사람에게는 아들이 삼(三) 형제(兄弟)는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범에게 물려 가고, 하나는 중(僧)이 되어 나가고, 하나만이 집에 남아서 가문(家門)을 이어 나가게 된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다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三) 형제(兄弟)가 모두 중(僧)이 되어 집을 나갔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로군요,>
<조금도 놀라 울게 없어요, 호랑이한테 물려 가지 않고 중(僧)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多幸)한 일이라구, 제 팔자(八字)를 제가 개척(開拓)해 나간다는데, 에미 애빈들 무엇 때문에 자식(子息)들의 앞길을 가로막겠느냐 말야,>
노인(老人)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은 인간(人間) 세상(世上)의 모든 것을 달관(達觀)한 듯한 말투였다.
<아드님들이 모두 출가(出家)했으면, 집에 젊은이가 없어서 두 분은 어떻게 생활(生活)을 꾸려 나가십니까?>
<두 늙은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 먹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 걱정이 없어요>
<걱정이 없다뇨? 누가 농사(農事)를 지어야 먹고 살아가실 게 아닙니까?>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16쪽~218쪽-계속-(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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