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5
그리하여 김삿갓은 문득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중국 송대(宋代)의 정치가)>의 유종산(遊鍾山)이란 시(詩)가 연상(聯想)되었다.
종일간산불염산(終日看山不厭山), 매산종대노산간(買山終待老山間),
산화락진산장재(山花落盡山長在), 산수공류산자한(山水空流山自閑).
*해석하면,
진종일 보아도 산은 싫지 않으니, 산을 사, 가지고 산에서 늙을까나,
꽃은 져도 산은 길이 남을 것이니, 물은 흘러가도 산은 마냥 한가로우리.
비록 왕안석(王安石) 뿐만 아니라 시인(詩人)이 자연(自然)을 좋아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인 듯,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인은 오우가(五友歌)라는 아래와 같은 시조(時調)를 읊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月)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김삿갓은 풀밭(草田)에 주저앉아 산(山)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덧 날(日)이 저물어 오고 있었다.
산속은 기후(氣候)가 변덕(變德)스러운 탓일까, 조금 전(前)까지는 멀쩡하던 산골짜기에 안개(霧)가 짙어지더니 어느새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김삿갓은 바랑(背囊)을 둘러메고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비(雨)를 피하기, 위해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인가(人家)를 찾아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인가(人家)는 보이지 않았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걸어오다 보니, 저 멀리 산기슭에서 하얀 연기(煙氣)가 한줄기 떠올라 보인다.
-옳지! 인가(人家)가 저기 있는가 보구나!-
가까이 다가와 보니 과연 초가(草家)집이 한 채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형편없는 오막살이 집(家)이었다.
마당에는 잡초(雜草)가 무성하고 지붕에는 칡덩굴이 덮여 있어서, 오막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움막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저런 움막에 과연 사람(人)이 살고 있을까?-
그러나 굴뚝에서 연기(煙氣)가 솟아나는 것을 보면 사람(人)이 사는 것만은 분명(分明)하기에 김삿갓은 움막 앞으로 다가와 주인(主人)을 불렀다.
주인(主人)을 불러도 대답(對答)이 없다. 두 번을 불러도 대답(對答)이 없다. 세 번째 부르니, 그제야 방문(房門)이 열리더니 해골(骸骨) 같은 노인(老人)이 머리를 내밀며,
<거, 누구요?>
하고 묻는다.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길(道)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자고 가게 해주세요,>
노인은 두말없이 방문(房門)을 활짝 열어 주며,
오래간만에 사람(人) 구경을 하게 되었구먼! 어서 들어와요,>
하고 사뭇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어두운 방(房) 안으로 들어서자, 노인(老人)은 동백기름 접시를 방(房) 한복판으로 밀어 내놓고 심지에 불을 켜준다. 그것이 호롱불이었던, 것이다.
불빛에 살펴보니 그 집에는 해골(骸骨) 같은 영감님 이외에 해골 같은 노파(老婆)가 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송장(送葬)이나 다름없는 늙은 내외(內外)가 단둘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콧구멍 만 한 단칸방에 세(三) 사람(人)이 이마를 맞대고 마주 앉자, 노파(老婆)는 사뭇 반가워하면서,
<이 험(險)한 산(山)길을 오시느라고 얼마나 시장하겠수,>
그러고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호박죽 한 그릇과 삶은 감자 한 바가지를 들고 들어와 어서 먹으라고 권(勸)한다.
<호박죽이 구미(口味)에 맞을지 모르겠수, 먹다 남은 것은 아니고 내일 먹으려던 것이니까 어서 들어요,>
<고맙습니다, 염치(廉恥)없이 먹겠습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13쪽~216쪽-계속-(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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