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4
그 옛날 중국(中國)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 본명 도잠(陶潛)>은 술이 거나하게 취(醉)하여 읊은 시(詩) 한 수(首)를 보자.
탐국동리하(探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해석하면,
동쪽 울타리의 국화꽃 꺽어들고, 남쪽 산을 유연히 바라보노라.
비단 도연명(陶淵明)이 아니기로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하는 데 조금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우리네 선인(先人)들도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할 때면,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 자고 가자.
하고, 한가락의 시조(時調)조차 읊어 가며 마냥 한가롭게 다니지 않았던가. 오로지 산(山)과 물(水)만을 구경하기 위해 지향(指向)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길이고 보니, 애당초 서두를 필요(必要)가 없었다.
눈(目)을 들어 보면 반공(半空)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것은 산(山)뿐이요, 고개를 수그려 보면 골짜기에 흘러가는 것은 오직 물(水)뿐이다. 그런데 골짜기에는 웬 돌(石)들이 그리도 많으며, 산(山)에는 웬 나무(木)들도 그렇게도 많은가.
얼른 보기에는 똑같은 나무(木)들이 한 덩어리로 푸르게 얼크러져 있는 것 같건만, 자세히 보면 나무(木)들은 종류(種類)가 제각각이 다르다.
김삿갓은 가지각색 나무(木)들을 허심(虛心)히 바라보며 걸어오는 동안에, 불현듯 어렸을 때 나무꾼들에게서 얻어들은 ‘나무 타령’의 몇 구절(句節)이 머리에 저절로 떠올랐다.
십 리 절반 오리나무
아흔아홉에 백자 나무
오다가다 가닥 나무
가다 오다 오동나무
님의 손목 쥐엄나무
달 가운데 계수나무
칼로 푹 찔러 피나무, ……,
나무의 종류는 하늘의 별(星)처럼 많건만, 그 많은, 나무(木) 이름들을 노래로써 익살스럽게 엮어 내려간 ‘나무 타령’은 너무도 멋이 들어 있었다.
가도 가도 산(山)길은 한(限)이 없었다. 한없는 산길을 한없이 걸어오노라니 목이 컬컬해 오며 술(酒) 생각이 간절(懇切)하였다.
그러나 술집은커녕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주가(酒家)를 찾아서 나서야 할지 막막하더라, 그래서 김삿갓은 두자미(杜子美, 712~770, 두보의 자)의 시 한 수(首)가 연상되었다.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粉粉), 로상행인욕단혼(路上行人欲斷魂),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해석하면,
청명절에 부슬부슬 봄비가 내려, 나그네의 마음이 마냥 외롭구나.
술집이 어디메뇨 물어를, 보니, 목동이 손을 들어 꽃동네 가리키네.
두자미(杜子美)가 봄나들이를 나섰을, 때에는 비(雨)가 왔던 모양이었다. 김삿갓이 산(山)속을 걸어 오고 있는 이날은 다행히 비(雨)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목동(牧童)을 만나야 술집을 물어 볼 터인데, 눈(目)을 씻고 찾아보아도 목동(牧童)은 없지 않은가. 술집(酒家)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마냥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을 한(限)없이 걸어가면 언젠가는 금강산(金剛山)이 나오겠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한없이 걸어 나간다. 오랜만에 먼 길을 걸어서 그런지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였다. 잠시 쉬어 가려고 풀밭에 주저앉아 먼 산(山)을 바라본다.
일찍이 장자(莊子)는 날아가는 나비를 그윽이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가 나비인지 나비가 자기인지 분간(分揀)을 못 했다는 고사(古事)가 있다.
김삿갓은 산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자기(自己)가 산(山)인지 산(山)이 자기(自己)인지 분간(分揀)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말하자면 산(山)과 사람(人)이 혼연일체(渾然一體)의 경지에 도달해 버린 셈이었으니 그것이 문제(問題)로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11쪽~213쪽-계속-(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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