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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213

서평

by 웅석봉1 2026. 3. 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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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 이탈리아 화가, 조각가, 건축가.

 

소설 김삿갓213

 

<저 구멍은 쥐구멍이 아니 옵니까,>

<저것을 어째서 쥐구멍이라고 하느냐?>

 

<사또님도 참! ()가 들락날락하니까, 쥐구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 옵니까,>

여인(女人)은 무심코 지껄인 대답(對答)이었다. 그러나 여인(女人)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사또는 죄수(罪囚)에게 이렇게 다그쳐 대는 것이었다.

 

<옳지! 네가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구나, ()가 드나드는 구멍을 쥐구멍이라고 하듯이, 네 남편(男便)만이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그 물건은 바로 네 몸에 달려 있다 하더라도 네 물건이 아니고, 네 남편(男便)의 물건이 아니겠느냐, 내 말을 이제야 알아듣겠느냐?>

 

<……,>

죄수(罪囚)가 자기 말에 걸려들어 아무 대꾸도 못 하자, 사또는 즉시(卽時) 최후(最後)의 판결(判決)을 선포(宣布)한다.

 

<저 계집은 어엿한 유부녀(有夫女)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맘대로 피웠으니, 파륜지죄(破倫之罪)를 범했음이 분명(分明)하다, 저 계집을 당장 끌어내어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곤장(棍杖) 삼십 대를 쳐서 놓아 보내라,>

 

그야말로 서릿발 같은 판결(判決)이었다. 김삿갓은 가슴에 치밀어 오르던 체증(滯症)이 한꺼번에 뚫려 버리는 듯한 통쾌감(痛快感)을 느끼며 사또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사또 어른! 이번 재판(裁判)은 진실(眞實)로 명판결(名判決) 이셨습니다, 사또에 대한 백성(百姓)들의 칭송(稱頌)이 갈수록 자자(藉藉)해질 것이 옵니다.>

 

사또 이범호(李凡鎬)는 미소를 지으며,

<이제부터 처리(處理)해야 할 사건(事件)이 아직도 여러 건이 남아 있으니, 선생(先生)은 끝까지 지켜보아 주소서,>

 

그러나 김삿갓은 그 이상(以上) 어릿광대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 얼른 사또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속이 좋지 않아, 잠깐 밖에 나가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야 하겠습니다,>

김삿갓은 거짓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서는 부리나케 숙소(宿所)로 달려왔다. 관사(官舍)에 두고 온 바랑(背囊)을 찾아, 가지고 도망(逃亡)을 가려는 것이었다.

 

이윽고 바랑(背囊)을 둘러메고 관사(官舍)를 도망(逃亡)쳐 나오려니, 어쩐지 사또에게 죄송(罪悚)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달포 동안이나 융숭한 대접(待接)을 받아 오다가 한마디 고별인사(告別人事)도 없이 떠나자니, 죄송스러워 인사(人事)를 대신하여, 다음과 같은 초사<(楚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나라의 시가(詩歌)> 한 구절(句節)을 바람벽에 휘갈겨 놓았다.

 

낙막낙혜신상지(樂莫樂兮新相知), 비막비혜신별이(悲莫悲兮新別離).

 

*해석하면,

 

즐거움은 새 사람을 알게 된 것보다 더 좋은 즐거움이 없고

슬픔은 친구와 서로 헤어지는 것보다 더 괴로운 슬픔이 없구나.

 

시 한 수로서 고별사(告別辭)를 대신하고 밖으로 나서니,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산천초목(山川草木)이 자기를 새삼스레 반갑게 맞아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바로 이런 길이 아니었던가. 나는 무엇 때문에 회양(淮陽) 군수(郡守)에게 붙잡혀 한 달 동안이나 몰풍류(沒風流)한 생활(生活)을 해왔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해방감(解放感)이 그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느새 봄이 짙어, 산속에는 가는 곳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滿發)해 있었다. 그리하여 정신없이 꽃구경하며 걸어가고 있노라니까, 불현듯 박준원(朴準源)의 간화(看花)라는 시가 연상되었다.

 

세인간화색(世人看花色), 오독간화기(吾獨看花氣)

차기만천하(此氣滿天下), 오역일화훼(吾亦一花卉)

 

*해석하면,

 

사람들은 꽃을 볼 때 빛깔을 보나, 나는 홀로 향기마저 좋아하노라.

좋은 향기 하늘 땅에 가득히 차면, 나도 또한 한 떨기의 화초인 것을!

 

이 시()는 입춘(立春)도 지나고 봄의 전령사(傳令使)인 변산 바람꽃, 영춘화(迎春花), 복수초(福壽草), 매화(梅花), 산수유, 목련(木蓮), 생강나무꽃이 피어나고 뒤를 이어 진달래, 개나리가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따듯한 봄날에 꽃을 바라보며(看花) 금석(錦石) 선생은 지었다.

 

*금석(錦石)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은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이고 순조(純組)의 외조부이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호조(戶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판서와 금위대장(禁衛大將) 등 삼영(三營)의 병권(兵權)8년 동안 잡았다.

 

김삿갓은 지팡이를 친구(親舊)삼아 인적(人跡) 없는 산속을 홀로 걸어 나가며, 멀고 가까운 산들을 유연(油然)히 바라보았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208~211-계속-(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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