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1
그리하여 날마다 향기(香氣)로운 술과 기름진 안주(按酒)로 김삿갓의 환심(歡心)을 사기에 여념(餘念)이 없었다. 그러나 김삿갓에게는 술과 안주(按酒)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며칠만 쉬어 가려던 예정(豫定)이 달포가 지남에 따라 천지(天地)에 봄기운이 충만(充滿)해 오자, 김삿갓은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衝動)이 자꾸만 절실(切實)해 왔다.
-그렇다! 작별(作別) 인사(人事)를 나누고 정식(定式)으로 떠나려면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아무 소리 소문(所聞)도 없이 슬쩍 도망(逃亡)을 가버리자-
김삿갓은 내심(內心)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날, 이범호(李凡鎬)가 불시(不時)에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先生)은 심심(甚深)하실 테니 이제부터 재판(裁判) 구경이나 하시죠, 오늘은 매우 흥미(興味)로운 재판(裁判)이 있을 예정입니다,>
김삿갓은 이범호(李凡鎬)를 마주 보며 묻는다.
<흥미(興味)로운 재판(裁判)이란 어떤 재판(裁判)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이범호(李凡鎬)가 대답한다,
<지금 재판(裁判) 사건(事件)이 많이 밀려 있어서, 오늘은 여러 건을 처리해야 할 형편(形便)입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유부녀(有夫女)가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男便)에게 고발(告發)을 당한 사건(事件)도 하나 있사옵니다, 그 사건(事件)은 제법 흥미(興味)가 있을 듯하여, 선생(先生)은 제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 계시다가 만약 제가 판결(判決)을 잘못 내릴, 경우에는 옆에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요컨대 동헌(東軒)에 나와 재판(裁判) 구경을 하고 있다가 사또로서 판결(判決)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에는 자기를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남의 재판(裁判)에 관여할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었다. 그러나 사또의 부탁을 거절(拒絶)하기가 난처(難處)하여 두말없이 사또를 따라 동헌(東軒)으로 나왔다,
이윽고 사또는 동헌(東軒) 마루에 덩실하니 올라앉더니,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男便)에게 고발(告發)을 당하여 끌려온 여인(女人)을 굽이 보며 준열(峻烈)한 어조(語調)로 문초(問招)를 시작한다.
<죄수(罪囚)는 듣거라, 너는 어엿한 남편(男便)이 있는 몸으로 남편(男便)의 눈을 속여 가며 외간(外間) 남자와 통정(通情)을 계속하였거늘, 유부녀(有夫女)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사또 앞에 죄수(罪囚)로 끌려 나오면, 누구나 겁에 질려 몸을 떨게 되는 법(法)이다. 그러나 문제(問題)의 여인(女人)은 어떻게 생겨 먹은 계집인지, 몸을 떨기는커녕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여인(女人)의 옆에는 남편(男便)인 듯싶은 사나이 하나가 웅크리고 서 있었는데, 몸을 떨고 있는 사람은 죄수(罪囚)가 아니고 오히려 그녀의 남편(男便)이었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계집이 어떻게 생겨 먹었으면 저렇게도 당돌(唐突)할까 싶어, 죄수(罪囚)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과연(果然) 사내들이 욕심(慾心)을 부릴 만큼 아름답게 생긴 계집이었다.
-계집이 예쁘게 생기면 얼굴값을 하는 법(法)이라고 하더니, 저 계집이야말로 그런 계집인가 보구나!-
죄수(罪囚)는 사또의 문초(問招)를 숫제 묵살(默殺)해 버린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또는 화(禍)가 동(動)했는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른다.
<네 죄(罪)를 아직도 모르겠느냐? 왜 대답(對答)이 없느냐?>
죄수(罪囚)는 그제야 얼굴을 똑바로 들더니 사또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앙큼스럽게 이렇게 대답(對答)하는 것이 아닌가.
<쇤네가 외방(外方) 남자(男子)와 정(情)을 통해 온 것은 사실(事實)이 옵니다, 그러나 남편(男便)을 속여 가며 정(情)을 통해 온 일은 한 번도 없사옵니다, 쇤네의 행실(行實)을 남편(男便)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옵는데, 그것이 어째서 죄(罪)가 된다는 말씀이 시 옵니까?>
너무도 방자(放恣)스러운 항변(抗辯)에 김삿갓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세상(世上)에 그렇게도 앙큼스러운 계집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사또도 어이가 없는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남편(男便) 되는 자에게 묻는다.
<그대의 아내는 그대의 허락(許諾)을 받아, 가지고 바람을 피웠노라고 말하는데 그게 사실(事實)인가?>
사나이는 두 손을 모아 잡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한다.
<집사람이 외간(外間) 남자(男子)와 정(情)을 통해 오고 있는 사실(事實)을 소인(小人)도 알고 있기는 하옵니다, 그러나 소인(小人)은 그러한 행실(行實)을 허락(許諾)해 준 일은 한 번도 없사옵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03쪽~205쪽-계속-(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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