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10
<소 임자(任子)와 도둑놈을 구별조차, 못하면서 판결(判決)을 어떻게 내리겠사옵니까? 어쩔 수 없이 판결(判決)을 내일로 미루고 소(牛)만은 억류(抑留)해 놓고 사람들은 내일 다시 오라고 일단(一旦) 돌려보냈습니다,>
<누가 누군지를 몰라 판결(判決)을 못 내리셨다면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그런 사실이 절로 알아 지게 되리라는 말씀인가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사람을 보내 조사(調査)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전에 그리로 염탐(廉探)꾼을 보내 놓았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그 사람이 내일 오전(午前) 중으로는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좌우(左右)로 흔들었다.
<염탐(廉探)꾼을 보내셨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소득(所得)도 없이 헛수고만 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범호(李凡鎬)는 예언(豫言)과 같은 그런 말을 듣고 크게 실망(失望)하는 빛을 보인다.
<아무 소득(所得)도 없이 그냥 돌아오게 되다뇨? 선생(先生)은 그렇게 될 것을 어떻게 아시옵니까?>
김삿갓은 껄껄 웃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증인(證人)이 나타날 정도(定度)라면 어떤 미친놈이 남의 소를 자기 소라고 우겨대겠소이까, 알아보나 마나, 그 소의 임자(任子)는 이웃이 없는 깊은 산골에 혼자 살다가 그런 봉변(逢變)을 당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김삿갓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果然) 그럴 성싶었다. 진짜 소 임자(任子)를 증명(證明)해 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누가 남의 소를 어거지로 빼앗으려고 덤빌 수 있을 것인가.
사또는 크게 낭패(狼狽)하여 김삿갓에게 다급스럽게 묻는다.
<선생!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處理)하면 좋겠습니까?>
김삿갓은 웃으며 대답한다.
<사람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사람보다 오히려 동물(動物)이 영리(怜悧)할 경우도 없지 아니합니다, 이번 사건(事件)만은 사또께서 직접(直接) 관여(關與)하실 게 아니라, 소에게 판결(判決)을 맡겨 버리는 편이 훨씬 현명(賢明)한 처사(處事)일 것 같습니다,>
재판(裁判)을 소에게 맡겨 버리라는 말을 듣고 난 이범호(李凡鎬)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재판(裁判)을 소한테 맡겨 버리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삿갓은 농담조(弄談調)로 대답한다.
<사또 어른의 재판권(裁判權)을 소에게 넘겨주라는 말씀입니다, 사또의 권한(權限)을 소에게 넘겨주라고 하니까, 권력(權力) 침해(侵害)를 당하시는 것 같아 몹시 섭섭하신 모양입니다그려, 하하하>
이범호(李凡鎬)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 그런 게 아니 오라, 말도 못 하는 소가 재판(裁判)을 어떻게 한다는 말씀입니까?>
<말은 못 해도 판결(判決)만 잘 내리면 될 게 아니 옵니까, 특히 이번 사건(事件)에 한해서는 흑백(黑白)을 명확(明確)하게 가려 줄 능력(能力)을, 가진 자는 오직, 소가 있을 뿐이 옵니다, 왜 그런지 제가 그 이유(理由)를 말씀드리죠,>
그리고 김삿갓은 이범호(李凡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소(牛)는 귀가(歸家) 본능(本能)이 어떤 동물(動物)보다도 강한 동물(動物)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간섭(干涉)하지 않고 그냥 놓아 주어 버리면 소(牛)는 영락(零落)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법(法)이 옵니다. 소(牛)가 어느 집으로 돌아가는가를 알고 나면 누가 소(牛) 임자(任子)이고, 누가 도둑놈인 것을 절로 알 수 있게 될 것이 아니 옵니까?>
이범호(李凡鎬)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감탄(感歎)한다.
<과연 너무도 절묘(絶妙)한 방법(方法)이 시옵니다,>
그러고 나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렇게도 쉬운 방법(方法)이 있는 걸 나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리고 보면 나 같은 머리가 둔한 놈은 애당초 사또가 될 만한 자격(資格)이 없는 모양이지?>
김삿갓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정(善政)을 베풀려고 너무 긴장(緊張)하시면 오히려 냉정성(冷靜性)이 흐려지는 법이니까, 그 점만 유념(有念)하셔야 합니다,>
<좋은 충고(忠告)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금 후에는 그 점에 대해 각 별이 유념(有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범호(李凡鎬)는 백성(百姓)들로부터 명관(名官)이라는 칭송(稱頌)을 듣고 나서부터 김삿갓을 어떤 일이 있어도 놓아 보내지 않을 결심(決心)이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201쪽~203쪽-계속-(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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