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208
이윽고 두 마리의 돼지(豚)가 완전히 불에 타고 나자, 사또는 방청객(傍聽客)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지금 우리는 살아 있는 돼지(豚)와 죽은 돼지(豚)를 눈앞에서 직접 태워 보았소, 그러니까 방청객(傍聽客)들, 중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두 마리 돼지(豚)의 입안이 어떻게, 다른가를 직접(直接) 알아보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두세 명의 방청객(傍聽客)이 달려 나와 돼지의 입안을 직접 검사(檢査)해 보니 과연 사또가 말한 대로 살아서 불에 타 죽은 돼지의 입안에는 재가 시꺼멓게 쌓여 있건만, 죽은 뒤에 불에 태운 돼지의 입안에는 재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과연 사또 어른은 정말로 귀신(鬼神) 같은 어른이시오, 저런 일까지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방청객(傍聽客)들은 사또의 지혜(智慧)로움에 모두 들 찬사(讚辭)를 아끼지 않는다. 사또는 방청객(傍聽客)들을 굽어보며 다시 말한다.
<지금 여러분 앞에서 돼지를 가지고 직접, 실험(實驗)을 해 봄으로써 살아서 불에 타 죽은 돼지와 죽은 뒤에 불에 탄 돼지는 입안의 상태가 판이(判異)하게, 다르다는 것을 다 아셨을 것이오, 그 점에 대해서 아직도 의혹(疑惑)을 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그러자 방청객(傍聽客)들은 열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외친다.
<사또 어른은 귀신(鬼神) 같은 어른이시옵니다,>
<나는 귀신(鬼神)이 아니고 사람이오,>
이범호(李凡鎬)는 방청객(傍聽客)들의 칭송(稱頌)을 가볍게 받아넘기고 나서,
<우리가 이미 돼지를 가지고 실험(實驗)을 해 보았으니, 이제부터는 저 여인(女人)의 남편(男便) 되는 사람의 시체(屍體)를 검사(檢査)해 보기로 합시다, 만약 시체(屍體)의 입안에 재가 쌓여 있으면, 그 사람은 단순히 불에 타 죽은 것이, 분명(分明)하니까 저 여인은 죄가 없다고 하겠지만, 시체(屍體)의 입안이 깨끗하다면 저 여인은 남편(男便)을 죽여, 가지고 불에 태워 버린 것이 분명(分明)하니까, 그때에는 살인죄(殺人罪)와 방화죄(放火罪)를 면하지 못할 것이오,>
하고 준엄(峻嚴)한 선포(宣布)를 내렸다.
미결수(未決囚)의 죄가 있고 없음을 가려내기 위해 시체(屍體)를 검사(檢査)해 보겠다고 선언(宣言)하자, 방청객(傍聽客)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설마, 자기 남편(男便)을 죽여 불에 태워 버리기야 했을라구?>
<그것도 모를 일이야, 사또가 저렇듯 준엄(峻嚴)하게 나오는 걸 보면 무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이제부터 시체(屍體)를 검사(檢査)해 본다니까 그 결과(結果)에 따라 판가름이 나겠지>
방청객(傍聽客)들의 의견(意見)은 제각기 구구하였다. 이윽고 형리(刑吏)들이 시체(屍體)를 마당 한복판에, 들어내어 놓자, 사또는 죄인(罪人)을 굽어보며 말했다.
<죄수(罪囚)는 들어라, 이제부터 시체(屍體)를 검증(檢證)하여 너에게 죄가 있고 없는 것을 명백(明白)하게 가려내기로 하겠다, 거듭 말하거니와 만약 시체(屍體)의 입안에 재가 쌓여 있으면 네 남편은 불에 타 죽은 증거(證據)가 분명(分明)하니까 그때에는 너를 이 자리에서 무죄(無罪) 방면(放免)을 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시체(屍體)의 입안이 깨끗하면 너는 남편을 죽여서 불에 태워 버린 것이 분명(分明)하니까, 그 경우에는 본부(本夫) 살해(殺害) 및 방화죄(放火罪)로 너는 죽음을 면(免)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형리(刑吏)들에게 시체(屍體)의 입안을 조사해 보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 형리(刑吏)들이 몰려와 시체(屍體)의 입안을 벌려 보이자, 방청객(傍聽客)들의 시선(視線)은 일제히 시체(屍體)의 입으로 쏠렸다. 여인(女人)에게 죄가 있고 없는 것이 명백(明白)히 밝혀질 순간(瞬間)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악독(惡毒)한 여자(女子)이기로 설마하니 남편(男便)을 죽이기야 했을라구!>
방청객(傍聽客) 중에는 아직도 죄수(罪囚)를 동정(同情)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입을 벌려보니, 시체(屍體)의 입안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입안처럼 깨끗하지 않은가.
그 광경(光景)을 보자 방청객(傍聽客)들은 저마다 분노(忿怒)를 폭발(爆發)시킨다.
<입안이 저렇듯 깨끗한 걸 보면, 저 사람은 저년의 손에 죽은 것이 분명(分明)하지 않은가!>
<세상에 제 서방을 죽여 불에 태우는 계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또 역시 새삼스레 분노(忿怒)를 금치 못하여 죄수(罪囚)에게 다그쳐 말한다.
<죄수(罪囚)는 들어라, 네가 남편(男便)을 죽여 불에 태워 버린 증거(證據)가 이렇게도 뚜렷한데, 너는 그래도 자백(自白)을 못 하겠느냐?>
죄수(罪囚)는 그 이상 무죄(無罪)를 고집(固執)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는지, 별안간 땅에 푹 엎어지더니 소리 없이 울기만 할 뿐이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196쪽~199쪽-계속-(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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