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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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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6. 3. 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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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 벨(1879~1961), 영국 화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사)

 

헌법에서 감사원(監査院) 관련 법 조문을 살펴보면, 헌법 (4) 정부, (2) 행정부, (4)에서 감사원을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에서는 감사원을 행정부(行政府)의 소관(所管)으로 되었다. 좀 더 구체적인 헌법(憲法) 조문을 살펴보면,

 

헌법 제97조는 국가의 세입(稅入세출(歲出)의 결산(決算),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會計)검사와 행정기관(行政機關) 및 공무원(公務員)의 직무(職務)에 관한, 감찰(監察)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所屬下)에 감사원을 둔다.

 

98조에는 1), 감사원은 원장(院長)을 포함한 5인 이상 11인 이하의 감사위원(監査委員)으로 구성한다. 2), 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大統領)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重任)할 수 있다. 3), 감사위원은 원장(院長)의 제청(提請)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99조는 감사원은 세입·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사(檢査)하여 대통령과 차 년도 국회(國會)에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100조에는 감사원의 조직·직무 범위·감사원의 자격·감사 대상 공무원(公務員)의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法律)로 정한다, 고 규정(規定)하고 있다.

 

헌법은 그 나라의 최고법(最高法)이다. 그런데, 감사원을 행정부(대통령) 소관으로 두면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들의 위법(違法) 사항이나 비위(非違)를 적발(摘發)하는데 한계(限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행정부(行政府)에서 분리하여 독립(獨立) 기구(機構)로 두면 좋겠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에는 감사원을 입법부(立法部) 소속으로 둔 나라도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는 입법(立法행정(行政사법(司法) 어느 부에도 소속되지 않고 완전(完全) 별도(別途)의 기관으로 둔 나라도 있다. 향후 헌법 개정 시에 참고(參考)하면 좋겠다.

 

또한, 감사(監査)는 감사(鑑査)와 조금 다르다. ()은 거울에 비추어 살펴보는 것이고, ()은 그냥 살펴보는 것이다. 두 표현이 비슷하기는 하나, 감사(鑑査)가 감사(監査)보다 더 엄격함이 있다. 그래서 감사원(監査院)을 감사원(鑑査院)으로 조정도 요망된다.

 

이처럼 한 나라에 감사원(監査院)이 있는 것처럼, 각종 회사나 단체, 심지어 계() 모임 등에도 감사라는 직책(職責)이 있어, 그 역할과 기능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감사의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좀 더 알기 쉽게 농협(農協)의 감사 사례(事例)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농협중앙회(農協中央會)에서 39년 동안 근무하는 중에 감사업무에만 전담(全擔)으로 종사한 기간이 도() 본부에서 2, 중앙(中央) 본부에서 5, 7년이나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울 S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1년간 감사에 대하여, 연구(硏究)한 경험(經驗)도 있다.

 

지금도 감사 관련(關聯) 근무자들과 소통(疏通)하고 있으니, 감사가 몸속 깊이 밴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다.

 

농협(農協)에서는 감사를 크게 내부(內部) 감사와 외부(外部) 감사로 구분하고, 내부 감사에도 자() 사무소 감사와 상부(上部) 감사로 구분하며, 상부 감사에는 농협 내의 상위(上位) 부서 감사와 외부(外部) 감사로 구분하고, 외부 감사에는 주무 부처(部處)인 농림수산부 감사, 감사원 감사 등을 말한다.

 

감사 일반론(一般論)은 이쯤하고, 본론(本論)으로 들어가 보자,

 

1972년 내가 울산 남창(南倉) 지소에 근무하던 어느 날 경남도지부(당시 부산시 소재)에서 두 사람의 감사 요원(要員)이 우리 사무실로 출장을 나왔다. 따지자면, 사내(社內) 상부(上部) 감사였다. 난생처음으로 감사라는 것을 접했다.

 

그런데 감사 요원 중에서 홍() ()라는 분이, 나를 고등학교 후배(後輩)라고 하면서 살갑게 대해 주셨다. 기수(基數)를 따져보니 그는 내 5년 선배(先輩)님이셨다.

 

일과가 끝난 밤에 그 선배님과 잡다(雜多)한 이야기 하던 중에 내 고민(苦悶)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학업을 더 보탤 욕심(慾心)으로, 부산으로 보내 달라는 운()을 떼보았다.

 

그랬더니 그 선배님은 부산(釜山)19699월에 경남(慶南)에서 분리되어 중앙회 직할 조합이라는 설명과 함께, 경남소속이 아니라서 곤란하다며, 대신(代身)에 경남이라면 어디든 노력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향인 산청(山淸)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나는 배움의 미련(未練)만 아니었다면, 객지(客地)에서 나 홀로 생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숙비(下宿費) 부담도 그렇고, 특히 울산같이 텃세가 심한(?) 곳에서 살기는 싫었다. 고향(故鄕)에서 가사(家事)를 도우면서 멋진 인생을 새로이 시작하고 싶었다.

 

그는 내 말을 기억하겠다면서 귀임(歸任)하였다. 그 후 그는 산청군농협에 나를 천거(薦擧)하였고,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이쪽에서 동의(同意)가 있어야 저쪽으로 갈 수가 있었던 구조였다. 그것은 조합별로 각기 법인(法人)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울주군농협으로 동의 요청(要請)이 있었으나 누군가가 거절해 버렸다. 아마도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 내 의견(意見)을 무시(無視)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따지면 따질수록 불이익을 당할 게 뻔했다. 다소 참담(慘憺)한 심정이었지만, 참고 넘겼다. 그래서 고향(故鄕) 근무(勤務)는 무산(霧散)되었고, 그 후,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 19964, 고향을 떠나온 지 30년 만에, 고향 지부장(支部長)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다. 감사 이야기를 하다가 어찌하여 내 아픈 속살까지 드려 내었는고! 허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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