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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회상하며> (인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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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6. 2. 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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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아드리앙 솔리어(1982~ 현재), 프랑스 아티스트.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인간관계)

 

첫 임지인 남창(南倉) 지소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3년 넘게 근무하면서 겪은 일화(逸話)도 무수히 많다. 즐겁고 보람 있는 일도 많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아쉬운 점 한가지 만 말하겠다. 입사(入社)한 그해(1970년도) 가을에 난데없이 언양(彦陽) 지소로 발령이 났다가 2개월 만인 연말 자금 회수기(回收期)에 다시 남창 지소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돌이켜 보니, 직장생활 만 39년 동안 1년도 안 되어서 사무실을 옮기는 일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었다. 왜 그런 인사(人事)를 당했는지 당시에는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어차피 직원(職員)이라는 존재(存在)는 조직(組織)의 부속품(附屬品)일 테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마음에 걸리는 사건(事件)이 하나 있었다. 당시에는 그 사건(事件) 때문이라고 추측(推測)만 했을 뿐이다. 그 사건이란 내가 당직(當直)도 아닌데 당직자(當直者)가 된 아주 고약(孤弱)한 사건이다.

 

지금이야 무인(無人) 당직으로 실제 사람이 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무인 당직이 없었고, 최소한 21조의 당직자가 있었다. 소규모 사무실은 직원이 몇 사람에 불과해 고정적(固定的)으로 총각(總角)이나 신규직원 등 미혼 직원들이 대직(代職)하는 경우가 태반(太半)이었다.

 

입사 1년 차인 1970년도 여름밤 본소에서 숙직<(당직(當直)에는 숙직(宿直)과 일직(日直)이 있다. 밤에 당직은 숙직이고 휴일 낮에 하는 당직은 일직이라 한다)> 점검(點檢)이 왔다. 이런 일은 가끔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날도 나는 사무실에 남아서 잔무(殘務)를 처리하고 있었다. 진짜 숙직자는 퇴근(退勤)하고 없었다. 그는 으레 내가 대직(代職)을 해 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해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무실로 들어온 점검자(당시 본소 인사 대리)는 나를 숙직자(宿直者)로 보았고, 숙직 완장(腕章)도 착용하지 않은 채, 숙직이랍시고 있었고, 게다가 내가 고분고분하지도 않을뿐더러 본소의 인사(人事) 대리(代理)를 몰라보는 아주 개망나니로 본 듯하다.

 

인사 대리는 직원들의 인사이동을 담당하는 책임자다. 그래서 본소로 귀임(歸任)한 그는 다음날 주의(注意) 촉구서(促求書, 주의 촉구는 징계 중에서는 가장 가벼운 징계이기는 하지만 기분은 매우 좋지 못했다) 한 장을 나에게 내린 일이 있었다.

 

원래 성격이 까칠한(깔끔한?) 나는 울산에 부임할 때부터도 불만(不滿)이 많았는데 정당(正當)한 절차(책임자의 승인)를 따져보지도 않고 나를 당직자(當直者)로 취급하니 다소 격한 반응(反應)을 보인 것이 원인이었다.

 

그때 점검 나온 서무 대리님은 이후 내가 담당 상무(常務)로 모신 분이다. 사귀고 보면 그분도 성격(性格)이 쾌활하고 정확한 분이셨다. 그런 사람이 보기에는 우리 사무소의 기강(紀綱)이 많이 해이(解弛)되어 있다고 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주의 촉구(促求)를 한 것이리라.

 

내가 언양(彦陽) 지소로 이동(移動)된 진짜 이유는, 당시 언양 지소는 사고(事故) 사무소(비료 담당 직원이 인기 비료인 요소 비료를 빼내어 팔아먹은 사고)이기에 유능한(?) 인력을 배치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오해(誤解)를 참회(懺悔)한다.

 

 

***참고로, 자금(資金) 회수기란 매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마을별로 자금 회수부를 작성하고 각종 대출금(농사자금은 물론이고 비료대, 농약대, 농기구 대 등)을 회수(回收)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들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자금 회수부(回收簿)를 만들고, 직원들이 출장(出張)을 가서 농가별(農家別)로 채무 확인(대출금 유무를 확인함)을 하고, 일정 기간 경과 후에 회수 절차(節次)에 들어가야 한다. 보통은 직원들이 출장을 가서 회수(回收)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 지역(地域)을 잘 아는 직원(職員)이 필요했다. 그래야 자금(資金) 회수(回收) 업무를 효율적(效率的)으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창 지소에서 나를 요청(要請)했다고 들었다.

 

당시 전 직원이 열한 명인 우리 사무실에는 소장(所長)님과 사환(使喚)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사람이 관내 전 지역을 나누어 자금 회수 업무를 담당(擔當)하였다. 내 경우는 온산면(溫山面) 화산리, 원산리, 당월리 등이 담당(擔當) 마을이었음을 첨언(添言) 한다. ~ 그 시절도 그립고 아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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