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씨 남정기(謝氏 南征記)>
때는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年間)에 금능(金陵) 순천부에 사는 유현(劉炫)이라는 명신(名臣)이 있었는데, 그는 늦게 아들 연수(延壽)를 얻었다. 유현의 부인 최 씨는 연수를 낳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유연수(劉延壽)는 15세에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여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10년을 더 수학(修學)하고 나서 관직(官職)에 나아가겠다고 하였다.
이에 천자(天子)는 특별히 본직(本職)을 유예(猶豫)하고 연수(延壽) 에게 6년 동안의 여가(餘暇)를 허락한다. 연수는 장원급제 후에 곧바로 덕성과 재주, 학식을 겸비한 사정옥(謝貞玉)과 혼인한다. 사씨는 연수와의 금슬(琴瑟)이, 좋았으나, 9년이나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이에 사씨는 남편(男便)에게 새로이 여자(女子) 얻기를 권했다. 유연수(劉延壽)는 사씨의 권유를 거절하다가 아내의 거듭된 설득에 마지못해 교채란(喬彩鸞)이란 여자를 새로 맞아들인다.
그런데 교(喬) 씨는 천성(天性)이 간악(奸惡)하고 질투(嫉妬)와 시기심(猜忌心)이 강한 여자로, 겉으로는 사(謝) 씨를 존경(尊敬)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憎惡)한다.
그러던 중, 교(喬) 씨는 임신(妊娠)하여 아들을 낳으면서 자기가 본처(本妻)가 되려고 작정(作定)하고, 문객(門客) 동청(董淸)과 모의(謀議)하여 남편 유연수(劉延壽) 에게 사(謝) 씨를 나쁜 여자라고 모함(謀陷)한다,
그러나 유연수(劉延壽)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야단을 치는데, 이에 교(喬) 씨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그 범인으로 사(謝) 씨가 시기(猜忌)하여 그런 짓을 했다고 뒤집어씌우자, 유연수(劉延壽)는 깜박 속고 말았다.
그래서 유연수(劉延壽)는 사(謝) 씨를 내쫓고 교(喬) 씨를 본처로 맞이한다. 교(喬) 씨의 간악(奸惡)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문객 동청(董淸)과 간통(姦通)까지 하면서 유연수의 전 재산을 탈취(奪取)하여 동청(董淸)과 도망가서 같이 살기로 약속한다.
그리하여 동청은 유연수(劉延壽)를 천자에게 참소(讒訴)하여 유배(流配)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유연수를 고발한 공으로 지방관(地方官)이 된 동청(董淸)은 교(喬) 씨와 함께 백성(百姓)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악행(惡行)을 저지른다. 그런데 과욕은 금물(禁物)이라던가,
조정(朝庭)에서는 유연수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그를 다시 불러들이고, 충신(忠臣)을 참소한 동청(董淸)을 처형하기로 한다.
유연수(劉延壽)는 비로소 교(喬) 씨와 동청(董淸)의 간계(奸計)에 속은 것을 깨닫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방(四方)으로 탐문(探問)하여 사(謝) 씨를 백방(百方)으로 찾는다.
한편, 남편 유연수(劉延壽)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謝) 씨는 산사(山寺)에서 나와 남편을 찾아 나선다. 사(謝) 씨와 유연수는 길에서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다시 만났다.
유연수(劉延壽)는 사(謝) 씨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백배사죄(百拜謝罪)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악한 교(喬) 씨와 동청(董淸)을 잡아 처형(處刑)한다. 사(謝) 씨는 다시 본처(本妻가) 되었다. 이로써 소설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난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1689년(숙종 15년)에서 1692년 사이에 경상도 남해(南海)로 유배(流配)가 있던 김만중이 쓴 가정(家庭) 소설이자 현실 풍자(諷刺) 소설이다.
서인(西人) 가문인 김만중<(金萬重, 1637~1692, 호(號) 서포(西浦), 자(字) 중숙(仲叔),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은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南人)이 정권을 잡자, 정계(政界)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
표면적으로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사회에서 벌어지는 처첩(妻妾) 간의 갈등(葛藤)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권력 쟁탈이라는 정쟁(政爭)이 숨겨져 있다. 그런 면에서 목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인의 지원(支援)을 업고 왕비(王妃)로 책봉된 희빈 장씨<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장씨(張氏, 1659~1701)>의 간악한 성정(性情)을 알리고 본처인 인현왕후를 하루빨리 맞아들일 것을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설의 효험(效驗)이 있었던지 결국 숙종(肅宗)은 희빈 장씨를 물리치고 인현왕후(仁顯王后)를 복위시키지만, 소설의 작가 김만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작가(作家)의 생전(生前)에 인현왕후 복위(復位)와 서인의 재집권(再執權)을 지켜보았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현재 목판본(木版本)인 국문본(國文本)을 비롯하여 그의 손자 김춘택(金春澤, 1670~1717)이 번역한 한문본(漢文本) 이외에 필사본(筆寫本), 활자본(活字本) 등으로 전(傳)하고 있다.
참조,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돌베개 간행, 2010), 신병주, 노대환 지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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