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179
계원 하나가 대뜸 반론(反論)을 들고나온다.
<차수(次首) 어른께서 범인을 굳이 밝혀내지 않으시려는 심정(心情)에는 저희 들도 존경(尊敬)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범인(犯人)을 감싸 주기 위해, 마을 사람 전체에게 도둑의 누명(陋名)을 씌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니 옵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범인은 반드시 밝혀내셔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도둑의 누명을 쓴 우리들이 무슨 낯짝으로 지상(地上) 낙원(樂園)을 이루려고 노력할 수 있겠습니까?>
사태가 그렇게까지 악화(惡化)되자, 무봉(無縫)은 범인을 밝혀내지 않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억지(抑止)로 눌러 버리려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 시호, 무봉(無縫)은 김삿갓과의 약속(約束)을 무시해 버린 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좋아! 자네들이 그렇게까지 극성(劇性)을 부리니 내가 이 자리에서 범인을 밝혀내기로 하겠네, 범인을 알아내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자네들의 손 냄새만 맡아보면,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낼 수 있으니까 말일세.>
계원(契員)들은 그 말에 모두 들, 어리둥절하였다.
<에? 손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犯人)을 알아낼 수 있다구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봉(無縫)은 계원들이 자기를 경악(驚愕)과 경의(敬意)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심(內心)으로는 크게 만족(滿足)스러웠다. 지도자(指導者)로서의 권위(權威)가 뚜렷하게 확인(確認)되어 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한마디 더 보태어,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가 되려면 머리를 잘 써야 하는 법이야, 손 냄새를 맡아보아서 범인(犯人)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니까 자네들은 무척 놀라는 모양인데,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메롱*
그러자 계원(契員) 하나가 손을 들며 묻는다.
<차수(次首) 어른! 손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을 대번에 알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 정말입니까?>
<이 사람아! 그런 것도 몰라, 가지고 서야 어떻게 향약(鄕約)을 지도(指導)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실상(實狀)인즉, 손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해 준 사람은 김삿갓이었다.
그렇건만 무봉(無縫)은 마치 자기 자신이 생각해 낸 것처럼 거드름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손 냄새를 맡아보고 어떻게 도둑놈을 알아낸다는 말씀입니까?>
계원들은 아직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모양이었다. 이에 무봉(無縫)은 통쾌하게 웃으면서 또 한 번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이제부터 손 냄새를 맡아보아서 범인(犯人)을 알아내기로 할 테니, 자네들은 꼼짝 말고 그 자리에서 손만 내밀고 있게>
계원(契員)들은 영문을 몰라 제각기 자신의 손 냄새를 맡아보며 한마디씩 중얼거린다.
<귀신(鬼神)이 아닌 바에야 손 냄새를 맡아보고 범인을 어떻게 알아낸다는 말인가>
<누가 아니래! 재수(財數)가 사나우면 남의 똥 자리에 주저앉게 될지도 모를 게, 아냐?>
무봉(無縫)은 그 소리를 듣고 또 한 번 큰소리를 친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내가 그래 생사람을 도둑놈으로 몰라 버릴 사람이란 말인가!>
그러고는 무봉(無縫)은 한 사람씩 손 냄새를 맡아보아 가면서,
<자네는 범인이 아니야.>
하고 선언할 때마다 계원들은 안도(安堵)의 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 무봉(無縫)은 위대한 심판자(審判者)가 된 것처럼 기세(氣勢)가 당당하였다.
그러나 최후(最後)의 한 사람까지 손 냄새를 맡아보아도 파 냄새가 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무봉(無縫)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거참 이상하네, 꼭 있어야 할 범인(犯人)이 없으니 웬일일까, 혹시 우리가 떠들고 있는 동안에 밖에 나가 버린 사람은 없는가?>
그제야 부랴부랴 인원수를 헤아려 보니, 아까는 분명히 31명이 출석했었는데 지금은 30명 밖에 없지 않은가, 계원(契員) 한 명이 아무도 모르게 없어진 것이었다.
사람 한 명이 없어졌다는 소리에 모두 들, 놀라 한 사람씩 호명(呼名)을 해보니, 김부일(金富一)이라는 계원이 아무리 불러도 전혀 대답이 없었다.
<김부일(金富一)은 조금 전까지도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사이에 어디 갔을까?>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128쪽~130쪽-계속-(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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