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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178

서평

by 웅석봉1 2026. 2. 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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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사걀(1887~1985),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소설 김삿갓178

 

무봉(無縫)은 지도자로서의 금도(襟度)를 보여 주기 위해 도도하게 설득 작전을 펴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이론에 수긍(首肯)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범인을 관대하게 보아주기 위해 마을 사람 전체가 도둑의 누명(陋名)을 쓰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 옵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범인(犯人)만은 분명히 밝혀내야 합니다.>

 

도둑이 누구인가를 밝혀내자는 마을 사람들의 주장(主張)은 너무도 당연한 이론이었다. 범인이 마을 사람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범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도둑의 혐의(嫌疑)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니, 그처럼 불쾌(不快)한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무봉(無縫)은 계원들의 그러한 심정을 알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의 심정(心情)은 나도 충분히 이해는 하겠네, 그러나 자네들의 주장대로 범인(犯人)을 밝혀 놓고 보면, 그 사람의 입장(立場)이 얼마나 거북할 것인가 말일세, 호랑이도 쏘아 놓고 보면 불쌍하게 여겨지는 법이야,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밝혀내면 그 사람은 영원히 매장(埋葬)을 당하게 되는, 것이야, 그러니까 한 번쯤의 과실(過失)은 너그럽게 보아주는 뜻에서, 범인을 굳이 밝혀내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래야만 범인도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우리 마을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있을 게 아니겠는가,>

 

무봉(無縫)은 김삿갓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설득을 용납(容納)하려고 하지 않았다.

 

<차수(次首) 어른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모두가 나쁜 짓만 해 먹다가, 지금은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지상 낙원(樂園)을 이루어 보려고 모여 온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 우리 마을만은 도난(盜難) 사건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과천선(改過遷善)했다는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하니, 그런 사람을 그냥 두고서야 어떻게 지상(地上) 낙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범인(犯人)만은 밝혀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역설(力說)하고 나서자 다른 계원(契員)들도 모두 들 입을 모아,

<옳소! 그 말이 옳소!>

하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계원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성싶어 무봉(無縫)은 입장이 점점 난처(難處)해졌다. 그렇다고 김삿갓과의, 철석같은 약속을 배반(背反)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봉은 생각다 못해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범인(犯人)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요, 그러나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이 얘기는 이 정도(程度)로 덮어 두자고 하는데, 자네들은 왜들 그렇게도 말이 많은가?>

 

그 정도로 윽박질러 놓으면 무난(無難)히 수습될 줄로 알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그럴수록 반발(反撥)이 심했다.

 

<차수(次首) 어른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옵니까, 범인을 알아낼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말부터 하지 마실 일이지, 마을 사람 전체에게 도둑의 누명(陋名)을 씌워 놓고 이제 와서 범인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면 그런 무책임(無責任)한 말씀이 어디 있사옵니까?>

 

무봉(無縫)은 자꾸만 궁지(窮地)로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계원들의 말에는 추호(秋毫)도 틀림이 없었다. 범인을 밝혀낼 자신이 없으면 숫제 범인은 마을 사람이라는 말부터 하지 않았어야 옳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마을 사람이라고 장담(壯談)을 해놓았으니, 그것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도둑놈으로 몰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백락촌(百樂村) 주민들은 워낙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많이 겪어 오는 동안에 성질(性質)이 괴팍스럽게 되어서, 경우가 거울처럼, 밝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평소에도 되지 못하게 거들먹거리는 무봉(無縫)의 행실(行實)이 몹시 아니꼽게 여겨져서, 이번 기회에 콧대를 꺾어 주려는 속셈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봉(無縫)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계원(契員)들의 반발에 화가 치밀어올라 앞뒤도 가리지 않고 또다시 큰소리를 쳐 보였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사고방식(思考方式)이 왜 그렇게들 유치(幼稚)한가, 내가 범인을 찾아낼 방법(方法)을 정말로 몰라서 모르노라고 말한 줄 아는가, 지도자(指導者)라는 사람이 그만한 슬기도 없어, 가지고 서야 어떻게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범인을 찾아내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낼 자신이 있네, 그러나 계원 한 사람을 매장(埋葬)시켜 버리기가 아쉬워서 일부러 범인을 밝혀낼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모두 들 그렇게 알고 나의 고충(苦衷)을 이해해 주기 바라네,>

 

무봉(無縫)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부각(浮刻)시켜 놓으려고 마구 큰소리를 쳐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계원(契員)들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결과를 초래(招來)하고 말았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26~128-계속-(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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