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176
듣고 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무봉(無縫)은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계원(契員)들도 발언자의 말에 모두 들 공감(共感)이 가는지,
<허기는 그래! 도난(盜難)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공금(公金)으로 보상(補償)을 해주려다가는 무슨 돈으로 견뎌 나노?>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은 신중(愼重)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젠걸!>
하고 제각기 한마디씩 씨부려 대고 있었다.
무봉은 대답이 매우 난처(難處)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차수(次首)의 체통(體統)이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아, 무봉(無縫)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발언자에게 역습(逆襲)을, 하였다.
<그러면 자네는 포천(抱川) 노파에게 보상금 지급하는 것을 반대(反對)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발언자는 당황(唐惶)하는 빛을 보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올시다, 이 자리에서 만장일치(滿場一致)로 가결된 일에 대해 제가 어찌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앞으로도 도난 사건의 뒷수습을 그런 식으로 해결(解決)해 나가려다가는 한이 없을 것 같아, 이 기회에 도난 사건의 근본 대책을 한번 논의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무봉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자네가 근본 대책에 대한 묘안(妙案)이라도 있거든 이 자리에서 말해 보게나,>
<근본(根本) 대책(對策)이란, 범인이 누구인지 꼭 잡아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범인(犯人)을 잡아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도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무엇으로 보장(保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범인을 잡아내어 발본색원(拔本塞源)할 생각은, 아니하고 공금(公金)으로 도난 손실(損失)에 대한 보상만 해주면 그만이냐, 하는 간접적(間接的)인 비난(非難)의 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계원(契員)들도 그 말에 수긍(首肯)이 가는지 모두 들, 머리를 끄덕이며,
<도둑놈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도 더 좋은 일은 없겠지, 그러나 도둑놈이 누구인지를 모르는데, 무슨 재주로 범인을 잡아내겠는구?>
하고 저희 들끼리 수군거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봉은 자신의 지혜(智慧)로움을 계원들에게 과시(誇示)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불현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하여 앞뒤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만만(自信滿滿)하게 이렇게 말했다.
<범인은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이 아니야, 범인(犯人)은 우리 마을 사람인 것이 확실해!>
김삿갓에게서 얻어들은 말이 있었기에, 자신을 가지고 큰소리를 쳐버렸던, 것이다. 만약 무봉이 조금만 신중(愼重)히 생각했다면, 그런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놓을 소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범인이 마을 사람이라는 말은, 마을 사람들 전체를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같은 말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원(契員)들은 그 말을 듣고 나자 모두 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차수(次首) 어른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옵니까, 도둑놈은 외부(外部)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 마을 사람이라면 도난(盜難) 사건의 범인은 우리 계원 중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계원들은 그렇게 반문(反問)하며, 저마다 한결같이 얼굴이 심각해진다. 모두가 도둑의 누명(陋名)을 쓰게 된 판이므로 얼굴이 심각(心覺)해질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무봉(無縫)은 방안의, 분위기(雰圍氣)가 별안간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자,
(내가 안 할 말을 했구나!)
하고 뉘우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차수의 체통(體統)을 생각해서도 취소(取消)해 버릴 수는 없기에,
<물론이지! 범인(犯人)은 틀림없이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 있어요!>
하고 분명하게 잘라 대답하였다.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임을 무봉(無縫)이 다시 한번 확언(確言)하고 나자, 계원들은 벌집을 쑤신 듯 별안간 소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도둑의 누명(陋名)을 뒤집어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저희 들끼리 네가 도둑놈이니, 내가 도둑놈이니 하고 한바탕 떠들어대다가, 계원(契員)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 무봉(無縫)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차수(次首) 어른께서는 조금 전에 매우 중대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범인은 분명히 우리 마을 사람 중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어디다 근거(根據)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무봉(無縫)은 좌중(座中)의 분위기가 점점 사나워 오는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실언(失言)을 뉘우치는 마음이 절실(切實)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한번 뱉어 놓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121쪽~123쪽-계속-(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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