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김삿갓> 177

서평

by 웅석봉1 2026. 2. 11. 10:39

본문

피에르 아드리앙 솔리어(1982~ 현재), 프랑스 아티스트.

 

소설 김삿갓177

 

<나는 자네들 모두에게 도둑의 누명(陋名)을 뒤집어씌우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야, 그러나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은 확실해, 그런 줄 알고 그 이상(以上)은 아무 말도 묻지 말아 주기를 바라네,>

 

무봉(無縫)은 그 얘기는 그 정도로 휘갑을 쳐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와같이 중대한 문제(問題)를 어름어름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차수(次首) 어른! 우리들 전체의 명예(名譽)에 관계되는 중대사(重大事)를 어떻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름어름 넘겨 버리자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차수 어른께서는 어디다 근거(根據)를 두고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 단정(斷定)하시는지, 그 점을 꼭 살펴 주셔야 합니다.>

 

계원들의 추궁(追窮)은 매우 심각(心覺)하였다. 무봉은 그럴수록 자신의 권위를 보여 주고 싶은 충동이 절실(切實)하여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범인(犯人)이 우리 마을 사람임은 자네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런 쉬운 문제를 가지고 왜 나에게 일일이 따지려고, 드는가>

 

계원(契員)들은 무봉의 말에 얼른 이해(理解)가 가지 않는지, 저희 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한동안 쑥덕거리다가 다시 말한다.

 

<저희 들은 머리가 우둔(愚鈍)하여 차수(次首) 어른의 말씀을 이해(理解)할 수가 없사옵니다, 누구나가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 더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시호, 무봉(無縫)은 우쭐하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머리가 왜 그렇게도 우둔(愚鈍)한가, 어젯밤 범인이 파를 훔쳐 갈 때에, 마을의 개들이 전연 짖지를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개가 범인을 보고도 짖지 않았다는 것은 개들이 범인의 얼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범인(犯人)은 마을 사람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무봉(無縫)은 김삿갓에게서 얻어들은 말을 자기가 생각해 낸 것처럼 내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무봉의 말을 듣고 나서, 모두가 감탄(感歎)을 마지않았다.

 

개가 범인을 보고도 짖지 않았다면, 개가 범인(犯人)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증거(證據)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과연 차수(次首) 어른은 사물을 관찰하는 판단력(判斷力)이 보통이 아닌데!>

<그렇다면 범인(犯人)은 우리들 중의 누구라는 것이 더욱 분명(分明)하지 않은가,>

 

계원들, 중에는 무봉의 관찰력(觀察力)에 탄복(歎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봉은 속으로 우쭐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 사람들아! 그만 한 관찰력도 없이 어떻게 지도자(指導者)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다시 한번 큰소리를 쳐 보였다.

 

모든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리라고 무봉(無縫)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계원 하나가 손을 들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항의(抗議)를 해오는 것이었다.

<지금 차수 어른의 말씀을 들어 보니, 범인은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것이 저희 들도 수긍(首肯)이 갑니다, 그러고 보니 문제는 점점 중대(重大)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아! 범인(犯人)이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슨 문제(問題)가 중대하다는 말인가?>

 

<아니올시다, 이미 범인(犯人)이 우리 마을 사람임을 말씀해 주신 이상, 그 사람이 누구라는 것까지도 밝혀 주셔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저희 들 전부(全部)가 도둑놈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은, 차수 어른의 의무(義務)라고도 생각됩니다>

 

은근히 압력(壓力)을 가해 오기까지 한다. 무봉은 책임을 강요(强要)하는 바람에 어안이벙벙해 왔다. 범인을 기필코 알아내자면 결코 불가능(不可能)한 일은 아니다, 김삿갓의 말대로 마을 사람들의 손 냄새를 맡아보면 범인을 쉽게 알아낼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범인을 절대로 밝혀내지 않겠노라고 김삿갓과 철석(鐵石)같은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무봉(無縫)은 짐짓 웃음을 웃어 보이며 이렇게 둘러댔다.

 

<이 사람들아! 범인이 우리 마을 사람인 것만 알았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엇을 밝혀내자는 말인가, 한 번 실수(失手)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만약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뚜렷하게 밝혀내면 그 사람의 체면(體面)이 뭐가 되겠는가, 그러니까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뚜껑을 덮어 두는 것이 상책(上策)일 걸세, 그래야만 범인도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23~126-계속-(177),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김삿갓> 179  (1) 2026.02.13
<소설 김삿갓> 178  (1) 2026.02.12
<소설 김삿갓> 176  (2) 2026.02.10
<소설 김삿갓> 175  (1) 2026.02.09
<사씨 남정기>  (1) 2026.02.07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