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김삿갓> 171

서평

by 웅석봉1 2026. 2. 3. 10:25

본문

피에르 아드리앙 솔리어(1982~ )프랑스 아티스트.

소설 김삿갓171

 

무봉(無縫)은 탄식(歎息)을 해가면서,

 

<어젯밤에 우리 마을에 커다란 불상사(不祥事)가 있었어요, 나도 조금 전에야 알았는데,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고 밑도 끝도 없이 씨부려 대는 것이었다.

 

<마을에 불상사가 나다뇨? 불상사(不祥事)란 도대체 어떤 일을 말하는 겁니까? 과부(寡婦)가 밤도망이라도 갔다는 말씀입니까?>

김삿갓은 일부러 너스레를, 쳐 보였다.

 

무봉(無縫)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과부(寡婦)가 밤도망을 갔다면 놈팡이를 따라간 것이 분명(分明)한데, 그게 무슨 불상사(不祥事)겠소>

 

<그러면 처녀(處女)가 아이라도 낳았다는 말씀인가요?>

 

<에이, 여보시오, 그런 농담(弄談)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이런 불상사(不祥事)를 어떻게 처리해야 향약(鄕約) ()의 차수(次首)로서 나의 권위(權威)가 설는지, 삿갓 선생의 지혜(智慧)를 빌리고 싶어 아까부터 선생(先生)을 눈알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무봉(無縫) 선생은 아까부터 불상사라는 말만 연발(連發)하고 계시는데, 대관절(大關節) 그 불상사란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건(事件)의 내용(內容)을 알아야만 조언(助言)을 해드릴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무봉(無縫)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失手)를 깨닫고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아차! 내가 아직 불상사(不祥事)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까마귀알을 먹었나, 이즈음에는 정신(精神)이 왜 이렇게도 없지, 실상(實狀)인즉, 어젯밤 백락촌(百樂村) 마을에 도난(盜難)이 있었어요, 우리 마을은 지상(地上) 낙원(樂園)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난 사건(事件) 같은 것은 한 건도 없었는데 어젯밤에 도난 사건(事件)이 처음으로 발생(發生)했으니, 이런 불상사(不祥事)가 어디 있겠느냐 말이오>

 

<백락촌(百樂村)에 도난 사건이 있었다구요? 도대체 누가 뉘 집 물건(物件)을 훔쳐 갔다는 겁니까?>

<물건(物件)을 훔쳐 간 것이 아니라, 밤사이에 누가 포천(抱川) 노파네 파밭에서 파를 몽땅 캐어 갔다는 거예요>

 

포천(抱川) 노파는 아들이 일찍 죽어서 손자(孫子) 3명을 데리고 파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아오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누군가가 백 평 가까운 파밭에서 파를 몽땅 캐어 갔다는 것이었다.

 

<포천(抱川) 노파가 조금 아까 나를 찾아와서 딱한 사정(事情)을 울면서 호소하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말이오?>

 

외로운 할머니가 오랜 세월(歲月)을 두고 정성껏 가꾸어 온 파를 밤사이에 몽땅 캐어 갔다면, 그것은 보통(普通) 사건(事件)이 아니다.

 

<파밭에서 파를 송두리째 캐어 갔다는 걸 보면, 요새 파 시세(時勢)가 무척 좋은 모양이죠?>

 

무봉(無縫)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오늘 처음으로 들은 이야긴데, 금 년은 파 농사(農事)가 흉작(凶作)이기 때문에, 파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래요,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이러나저러나 이런 불상사(不祥事)는 우리 마을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후(事後) 처리를 잘해 줘야만 차수(次首)로서 나의 권위(權威)가 뚜렷해질 게 아니겠소, 그래서 이번 일만은 사후(事後) 처리를 멋들어지게 해주고 싶은데, 어찌했으면 좋을지 삿갓 선생이 좋은 지혜(智慧)를 좀 빌려주시오.>

 

무봉(無縫)은 도난 사건 자체를 중대시(重大視)하기보다는,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신의 권위(權威)가 뚜렷하게 세워 보이고 싶은 공명심(功名心)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사후(事後) 처리란 별, 게 있겠습니까, 살림살이가 궁색(窮色)한 할머니가 그런 일을 당했다니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가가호호(家家戶戶) 돌아가며 돈을 얼마씩 추렴을 해주면 좋을 것 같군요>

 

김삿갓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백락촌(百樂村)에는 향약계(鄕約契)가 있는 것이 머리에 떠올라 이렇게 말했다.

 

<, 이 마을에는 향약계(鄕約契)가 있지 않습니까, 향약계의 강목(綱目) 중에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강목(綱目)도 들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환난상휼(患難相恤)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도와줘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 취지에 따라서 도난(盜難)당한 손해(損害)를 향약계에서 변상(辨償)을 해주면 될 게 아닙니까,>

 

무봉(無縫)은 그 말을 듣고 감탄(感歎)의 무릎을 친다.

 

<, 그렇군요,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는데, 선생이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해주셨소이다, 그러면 포천(抱川) 노파의 도난 손실에 대한 변상은 향약금(鄕約金) 중에서 내주도록 하겠소이다, 설마 마을 사람들이 반대(反對)는 안 하겠지요.>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09~112-계속-(171),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김삿갓> 173  (1) 2026.02.05
<소설 김삿갓> 172  (1) 2026.02.04
<소설 김삿갓> 170  (1) 2026.02.02
<소설 김삿갓> 169  (1) 2026.01.30
<소설 김삿갓> 168  (1) 2026.01.29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