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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168

서평

by 웅석봉1 2026. 1. 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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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1862~1918), 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소설 김삿갓168

 

<무봉(無縫) 선생이 그렇게 나오시니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先生)이 보시다시피 나는 며칠 전에 솜옷을 새로 지어 입었습니다, 그러니까 행여 옷은 짓지 말도록 전해 주십시오,……, 그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는 술()이나 마십시다.>

 

김삿갓은 술을 마시면서도 기분이 도무지 개운치가 않았다. 어쩐지 자기 자신이 무봉(無縫)의 손바닥 위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는 무봉(無縫)과의 만나기를 되도록 피해 가며, 시간만 있으면 해월정(海月亭)에 올라가 혼자 시간(時間)을 보냈다.

 

날씨가 무척 화창(和暢)한 어느 날, 이날도 김삿갓은 산속을 오랫동안 혼자 배회(徘徊)하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아낙네 한 명 만났다. 김삿갓은 산중(山中)에서 아낙네를 만나는 순간(瞬間), 얼마 전에 그 근방(近方)에서 만난 일이 있었던 젊은 아낙네를 불현듯 연상되었다.

 

그 여인은 한밤중에 해월정(海月亭)에 올라가 늙은 중과 해괴망측(駭怪罔測) 한 음사(淫事)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에 만난 아낙네는 결코 그런 탕녀(宕女)는 아닌 것 같았다,

 

지난번의 여인(女人)은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치마저고리 바람이었는데, 이날 만난 아낙네는 몸에는 장옷을 입고 머리에는 남바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행세깨나 하는 양반댁(兩班宅) 마나님이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점잖은 댁 마나님이 하인(下人)도 안 데리고 산길을 혼자 가다가 도둑이라도 만나면 어찌하려고 저러실까?)

 

김삿갓은 맘속으로 그런 부질없는 생각조차 해보면서 산속을 마냥 배회(徘徊)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인이 지나간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문득 깨닫고 보니, 저 멀리 산중(山中)에서 남녀 간에 시비(是非)를 가리는 듯한 말소리가 바람결에 아득히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거리 관계로 말소리의 내용(內容)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주고받는 억양(抑揚)으로 보아 시비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分明)해 보였다.

 

(! 조금 아까 지나간 그 마나님이 혹시 산속에서 도둑이라도 만난 것은 아닐까?)

 

김삿갓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소리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 나왔다. 그리하여 얼마를 가다가 앞을 살펴보니, 저만큼 잔디밭 위에서 아까 그 마나님이 오십(五十) ()가량 되어 보이는 스님과, 말다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둑이 아닌 것만은 천만다행(千萬多幸)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점잖은 댁 마나님과 지나가던 스님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싶어, 김삿갓은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하회(下回)를 기다려 보았다.

 

그러자 그때 스님이 마나님의 손목을 움켜잡으려고 팔을 내밀면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이 산중(山中)에서 한 번쯤 정()을 나누기로 뭐가 나쁘단 말이오?>

하고 해괴(駭怪)한 요구(要求)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나님은 결코, 녹록지가 않았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당당한 위엄(威嚴)을 보이며 스님을 이렇게 꾸짖는 것이다.

 

<석존(釋尊)의 십계(十戒) 중에 불사음계(不邪淫戒)라는 대목이 뚜렷하게 나와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대사(大師)께서는 어찌하여 일시적인 사념(邪念)으로 파계(破戒) 하려고 하시나이까, 한두 번의 과오(過誤)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 옵니다, 이 순간부터나마 사념을 깨끗이 버리시고 수행(修行)에 전염(專念)하도록 하시옵소서.>

 

*십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음주(飮酒)와 몸치장을 하거나 향을 바르지 말 것, 풍류를 즐기지 말 것, 높은 평상에 앉지 말 것, 제때가 아니면 먹지를 말 것, 재물을 모으지 말 것, 등 열 가지 금기 사항.

 

김삿갓은 그들이 싸우는 원인을 그제야 분명하게 알고, <저런 죽일 놈!>하고 자기도 모르게 스님을 매도(罵倒)하였다. 마나님의 당당한 태도(態度)에는 존경(尊敬)을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욕정(欲情)의 화신(化身)이 되어 버린 중놈은 좀처럼 물러설 기색(氣色)을 보이지 않았다. 중놈은 장삼(長衫), 입은 데다가 어깨에는 붉은 가사(袈裟)를 걸치고 손에는 육환장(六環杖)까지 짚고 있어서 차림새만으로 보아서는 제법 품위(品位)가 고상(高尙)해 보였다.

 

그러나 마음이 욕정(欲情)에 사로잡히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는지, 중놈은 여인(女人)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한 기세로, 이렇게 꼬셔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물(萬物)은 인연(因緣)의 소생(蘇生)이라고 하오, 우리가 깊은 산중(山中)에서 이렇게 단둘이 만난 것은 전생(前生)부터의 인연일 것이오, 그대는 어찌하여 전생부터의 인연을 무시(無視)하고, 나의 간절한 욕구(慾求)를 거절(拒絶)하려고 하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두말 말고 나의 소원(所願)을 꼭 들어주오!>

 

그러나 마나님의 태도(態度)는 어디까지나 의연(依然)하였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02~104-계속-(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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