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愼) 주사!, 이거 귀한 고기야. 어탕(魚湯) 해서 저녁에 동료들이랑 한 잔씩 들~해!>
*당시 농협 서기(書記)를 외부인들은 주사(主事), 혹은 주임(主任)이라 불렀다.
고개 숙여 박스를 받아, 허리에 끼고 버스에 올랐다. 풋풋한 농심(農心)이 내 눈을 감긴다.
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청량면(靑良面) 덕하역(德下驛)에 내려서 또다시 한참 동안을 기다려서, 오는 기차(汽車)에 몸을 싣고 남창역(南倉驛)에 내려서니, 15킬로 들이 생선 박스는 허물 거리고, 해는 뉘엿뉘엿 황혼(黃昏)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총각(總角)들만 남아 하루 일을 마무리 중이었다. 그날 밤 하숙집 아주머니는 맛깔스러운 요리(料理) 솜씨로 얼큰한 물메기 어탕(魚湯)을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하숙생(下宿生)과 우리 총각 직원(職員)들은 진한 파티를 벌릴 수 있었다. 모처럼 훈훈한 여름밤이었다. *그 하숙집에는 나와 남창(南倉)중고등학교 선생님 몇 분이 있었다.
그 밤에 혼자 누운 내 가슴으로 농심(農心)이란 글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참, 뿌듯하였다.
한편으로는 낮에 대리(代理)님의 말씀이 새벽안개처럼 꾸역꾸역 내 머리를 내리 짓누른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소장(所長)님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제 일을 대강(大綱) 설명하니 소장님도 어제 오후에 들었는지, 이미 아시는 눈치다. 힐끔 쳐다보는 소장님의 눈초리가 매섭다. 찰나에, 놋쇠 같은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소장님은 사택(舍宅)이 사무실과 붙어있어 출근은 항상 일등이었다.
<신주임! 정신 있어, 없어! 거 말이야. 농약 팔아 얼마 남는다고 택시를 타나. 당신, 말~야, 농협, 말아 먹을 사람 아냐!>
전연 예상치 못한 건 아니지만 얼굴이 화끈했다. 어제 고생했다는 말을 바라지는 않았었지만, 그래도 고생이란 고(苦), 자(字) 한마디라도 하고 소리를 질렀으면 이리도 슬프지는, 않을 텐데,……,
어제 결정할 때도 경비(차비)가 문제 된다면, ……, 여차하면 내 봉급(俸給)에서 부담하지, 생각했었다. 그러하니 소장님의 마지막 말이 목에 가시로 꽂혔다.
‘당신, 말~야! 농협, 말아 먹을 사람 아냐!’ 그 말만 안 했어도 내가 이처럼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강한 오기(傲氣)가 생겼다.
<소장님! 그럼, 직접(直接) 사업비(경비)는 뭐에 쓰라고 있는 겁니까?>
내 목이 소장님을 향해 뻣뻣해졌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소장님 책상(冊床) 위에 있던 재떨이가 내 발 앞에서 박살(撲殺)이 났다.
나이 많은 안(安)주임이 나를 잡아끌었다. 밖으로 끌려 나가면서 북받치는 울분(鬱憤)을 참지 못하고 나는 큰소리로 쏘아붙였다. *당시 우리 사무실 직원은 총 10명이었다.
<예산(豫算, 경비)은 높은 사람 접대(接待)나 하고, 소장님 술 퍼마시라고 있는 겁니까? 치사(恥事)합니다. 이런 농협 그만두겠습니다!>
그 길로, 하숙방으로 들어와 한나절 동안 농협 생활 1년 6개월을 회상(回想)했다. 그런대로 미련(未練)도 없었다. 내 평생(平生)을 이런 서러운 농자(農字)에 매이느니 지금 떠나자, 생각하니 사표(辭表) 쓰는 손이 한결 가볍다.
난생처음 쓰는 사표였다. 이참에 잘되었다 쉽다. 농협 아니면 밥 굶을까,……, 오후(午後)에, 사직서(辭職書)를 호주머니에 꾸겨 넣고 사무실로 향했다.
마침, 샛강(희야 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눈 속으로 자꾸만 밀어닥친다. 어머님 얼굴이 어른거린다. 동시(同時)에 고향(故鄕) 마을을 흐르는 강물 소리가 내 귀속을 거물거렸다.
***
그날 이후, 나는 농협에서 만 37년을 더 근무(勤務)했다. 퇴직(退職)한 지금까지 한 번도 농협(農協)이 싫은 적도, 그날의 객기(客氣)와 선배 동료들을 잊은 적도 없다.
나는 농심(農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생각하면, 문득 그리운 사람,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 어머니 같은 사람, 애인 같은 사람, 옛친구 같은 사람, 그런 사람 같은 그 무엇이 농심일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지금도 들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던 그때의 그 순박(淳朴)한 농민(農民)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낫과 삽을 들고 과수원(果樹園)으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2~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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