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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을 기다리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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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6. 1. 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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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1924~2015) 전남 고흥 출신 화가.

농심(農心)을 기다리며

 

시퍼런 들판이 바람에 쓰러지고 일어선다. 빨리 자란 벼에서는 하나, 둘 이삭이 피어오른다. 꽁보리밥에 섞인 쌀알 같은 빛깔이다. 그날은 장마(梅雨)가 지나간 다음 날이었다. 그날은 바람 부는 날이었다. 그날은 까마득한 1971년 여름이었다.

 

첫 근무지인 이곳은 옛 금융조합(金融組合) 지소 건물 그대로다. 언제나 사무실은 고요하였다. 당시만 하여도 외근(外勤)이 많았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마침 파월(派越)한 동료(同僚)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전쟁(戰爭)과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정적(靜寂)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마침, 내가 전화를 받았다. 그때는 우체국 교환 아가씨들이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다급(多急)하였다. 해안(海岸)에 있는 온산면사무소(溫山面事務所) 산업(産業) 계장(係長)님이었다. 마침, 그 일은 내 일이었다.

 

<만석(萬石) 뜰이 도열병(稻熱病)으로 타들어 가고 있소. 공동방제(共同防除) 약이 동이 났어요. 아주 급하오. 최소한 가스가민 열 박스만 오전 중으로 빨리!!!>

답할 사이도 안 주고 전화를 끊었다.

 

*가스가민은 도열병을 방제하는 액체의 살균제(殺菌劑). 공동방제란 농약(農藥)은 농협(農協), 방역(防疫)은 행정(行政, 면사무소)이 맡아서 처리하는 시스템이었다.

 

긴 장마가 끝나니 병이 무시(無時)로 퍼지나 보다. 그런데, 다행히 약은 있는데 갈 길이 문제(問題)였다. 주도로(主道路)가 장맛비에 유실(遺失)되어 몇 일째 마이크로버스 운행이 중단(中斷)되고 있었다.

 

다른 길이 있긴 하지만 택시 한 대 겨우 다니는 둘러 가는 먼 길이었다. 가끔 급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또 다른 방법은 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方法)이 있긴 하다.

 

농약이 자그마치 열 박스라 기차로는 무린데, 난감(難堪)하네.’ 뒤를 돌아보니 소장(所長)님은 자리를 비웠고, 대리(代理)님이 무언가 열심히 적고 계신다. 대리님께 다가가서 자초지종(自初至終) 전화(電話) 내용을 설명하니 반응(反應)이 신통치 않다.

 

<글쎄 이해(理解)는 가는데, 택시로 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을까? 소장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처음 있는 일이라……, 자네가 알아서 잘~알 하게!>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대리(代理)님은 소심(小心)하시다. 이럴 때 소장(所長)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농민들의 아우성()이 내 가슴을 찌른다. 애간장이 타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이다. 어허, 난감(難堪)하도다.

 

고민 끝에 소장님과의 상의(相議)나 승인(承認)도 없이, 나는 면()에서 한대 밖에 없는 시발택시에 가스가민 열 박스를 싣고 달렸다. 겨우겨우 7할이나 갔을까? 가는 길이 수파(水波)에 떠내려가 엉망이었다. 길이 크게 잘려 나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스가민박스 하나하나를 길 건너편에 옮겨놓고, 시발택시는 보내고, 인근 동네 이장(里長)님을 찾아 협조를 구했다. 인심(人心) 좋은 이장님과 함께 경운기에 농약(農藥)을 옮겨 실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耕耘機)를 타고 면사무소(面事務所)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 기다리던 김() 계장님의 눈가가 벌겋다. 이어 만석(萬石) 들녘에 오르니 농부(農夫)들의 주름살이 펴인다. 누군가의 굵은 목소리가 내 귀를 붉게 만든다.

 

<어이, () 주사(主事)! 신 주사 장가는 우리가 책임질게. 가을 해 놓고 봄세!>

 

방제가 시작되는걸 보고 돌아와 버스 정류소(停留所) 앞 국밥집에서 계장님과 마주 앉았다. 덕하역(德下驛)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탁주 한 되 받아놓고 잔 사이로 말() 주고받았다. 빈속이라 탁주 한 잔에 핑 돈다.

 

오라는 버스는 안 오고 동네 어부(漁夫)들이 갓 잡은 고기 통들을 들고 낑낑거리며 들어온다. 아는 사이라 반갑게 인사한 계장(係長)님은 고기 통에서 큰 놈 한 마리를 가리킨다.

 

어부(漁夫)는 그놈을 들어 빈 멸치 박스에 담는다. 버스가 온다. 내가 일어서는데 계장(係長)님이 그 박스를 나에게 내민다. 2~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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