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하며>(채권 관리)
소인(小人)은 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관계로 지점을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업무 추진은 무엇보다도 실무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87년 5월, 채권 관리 담당 책임자로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추진한 것이 지점의 부실채권(不實債權)을 본소로 이관받아 집중적(集中的)으로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지점을 고질(痼疾) 채권(債權) 관리에서 벗어나게 하여 각종 사업 추진에만 매진(邁進) 하게 하자는 생각에서다.
이런 안(案)을 기안(起案) 하여 사무소장(지금은 고인이 되신 경남고, 서울법대 출신)께 건의서를 올렸더니, ‘신(愼) 대리(代理)를 내가 발탁하기를 잘했구먼’하고, 흡족해하시고는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즉석에서 결재(決裁)하셨다.
곧바로 시행(施行) 문서를 작성 부산시 관내의 전 농협 점포에 보냈다. 육십여 개(?)에 달하는 금융 점포의 부실채권들이 일시에 부산 본점으로 이관(移管)되었다. 건수가 수백 여건에 달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과(課)에서 이를 감당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담당과장과 상의(相議)하였더니, 과장님은 지점에 기존의 채권을 관리하던 인력이 있을 터이니, 그 사람들을 잠시 활용(活用)하자는 의견을 주시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규모가 큰 영업점(營業店)을 골라서 직원 십여 명을 본점으로 파견 근무(勤務)케 하였다. 그리하여 파견(派遣)된 직원에게 일제히 재산조사를 시켰다. 재산조사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공부(公簿)를 중심으로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려면 우선 동사무소(洞事務所)에 가서 주민등록초본부터 발급받고, 그리고 부동산등기소(不動産登記所)로 가서 주민등록초본(住民登錄抄本) 상 전(前) 현주소지(現住所地)의 모든 부동산등기부 등본을 발급받도록 하였다.
공부(公簿, 주민등록초본, 등기부 등본) 발급을 위해서는 현장 출장이 필요했다. 우리는 구청별(區廳別)로 담당 직원을 지정하여 그들에게 출장을 가게 하였다. 그래서 해당 채무자(보증인 포함)의 주민등록초본과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았다.
주민등록초본 상의 전 현주소지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 이를 확인하여, 본인 소유 재산이 있으면, 그 부동산에 대한 <시가추정표(市價推定表)>를 작성하고, 동시에 실익(實益)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자 의견까지 붙여서 즉시 가압류(假押留) 등 후속 조치를 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통합 채권 관리는 효율적(效率的)이었다. 당시 이런 것을 제도화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서울이나 인천. 대구. 광주 등 대도시(大都市)부터 시행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인데, 이런 사항을 중앙 본부(中央會)에 건의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그러나 세월(歲月)이 흘러 지금은 한자리에서 거의 모든 공부를 발급받을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서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편, 그 무렵에 농협을 포함한 금융기관에서는 소송대리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부실채권의 집행권원(執行權原)을 얻기 위한 소송에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본부 채권관리부와 각시도의 채권 관리 담당 책임자는 농협 최초의 소송대리인이 되었다.
소인도 이때 소송대리인(訴訟代理人)이 되어(1987년 5월 6일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등기부에 등재) 법원(法院)에 나가서 실제로 많은 건의 소송(訴訟)을 한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소중(所重)한 경험이었다.
1987년 6월 무더운 여름철 어느 날, 고질 채권 회수를 위하여 부산지방법원에 지불명령(支佛命令) 신청서를 제출하고 소송기일에 법원에 출석하여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단독판사가 농협 대리인을 호명(呼名)하더니, 변호사(辯護士)도 아닌데 어떻게 출석한 것이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소송대리인(訴訟代理人)입니다’ 했더니, 누가 대리인으로, 허가 했느냐고 되묻기에 내가 머뭇거리자, 판사는 서류를 보더니 아, 소송대리인 신청을 하셨군요 하면서 그 판사는<허가 하고>라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등기부상의 소송대리인이라도 판사(判事)의 허가(許可)가 필요하다(물론 형식적이긴 하지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중한 첫 경험(經驗)이었다. 아마 지금도 금융기관의 소송대리인 제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지점에서 차출(差出)되어 고질 채권 회수에 구슬땀을 흘리신 일선 지점 직원들과 소인(小人)과 함께 근무한 김윤생 님, 문태환 씨, 정상현 씨 등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게 감사(感謝)와 고마움을 전한다. 2~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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