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정(鑑定)
1987년 6월은 역사적인 달이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에 맞서 전국에서 들고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달이다. 그때 소인(小人)은 광복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해 6월 29일 노태우(盧泰愚, 1932~2021, 제13대 대통령) 대통령 후보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6·29 선언을 통하여 민주 정부를 출범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의 독재 정권은 가고 민주 정권이 태동(胎動) 되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그해 4월, 현행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고집하는 전두환(全斗煥, 1931~2021, 제11대~12대) 대통령의 담화에 대하여 <호헌(護憲) 철폐>라는 구호로 맞섰던 민주(民主) 시민들이 격한 데모(후에 이를 6월 항쟁이라 하였다)로 거리를 메운 결과, 세상은 서서히 눈을 깨기 시작하였다.
생각하면 전두환(全斗煥)이나 노태우(盧泰愚)는 육사 동기이자 혁명 동지이지만, 6·29 선언과 5공 청문회(聽聞會)를 거친 이후에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다고 생각된다.
6·29 선언 이후, 마침내 노조의 시대가 열렸고, 이때 농협을 비롯한 많은 회사나 기관 단체가 노조를 만들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기본적으로 소인도 약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고 그래서인지 노동조합운동(勞動組合運動)을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건전한 노동조합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정신이 몸에 배어서인지, 2005년 12월, 성남 지부장 시절에 노동조합으로부터 <존경하는 상사 상(像)>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 상패를 가보(家寶)로 생각하고 지금도 소인의 작은 서재(書齋) 위에 놓여있다.
광복동(光復洞) 시절, 왜 광복동이 되었을까? 찾아보았다. 광복을 기념하면서 지은 이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광복동은 부산 중구에 위치하며 용두산공원, 자갈치시장, 영도다리, 부산 국제영화 광장 등 명소가 많은 문화관광(文化觀光) 중심지다.
그 후 소인은 전국을 두루 근무했었지만, 부산 광복동에서 고향을 느낀다. 광복동은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다. 특히 광복동 시절에는 수많은 일화(逸話)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감정(鑑定) 업무부터 풀어 보고자 한다.
감정은 담보물(擔保物) 감정과 일반 감정으로 나뉜다. 담보물 감정은 대출금의 담보가치를 평가하는 것이고, 일반 감정은 담보물 이외의 물건(物件)을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유하고 있던 재산(자동차나 부동산)을 처분할 때 하는 감정을 말한다.
보유 차량(車輛)은 사용 연한이 지나면 처분한다. 자동차의 경우는 보통 5년이다. 소인이 근무하던 사무소가 부산 시내의 모든 영업점(일백여 개소로 기억한다)을 관장하는 본점(本店)이었으니, 업무량도 많았다.
근무 중에 자동차 처분(處分) 감정을 많이 했는데, 당시 자동차의 주종은 현대자동차의 스텔라와 포니였다. 스텔라는 규모가 큰 사무소에 배치된 차량(車輛)이고 포니는 작은 사무소에 배치된 차량이다. 당시 스텔라가 포니보다는 가격이 제법 높았다. 그러니 스텔라를 타고 다니는 사무소장은 어깨에 힘이 들어있었고, 운전하는 직원도 덩달아 어깨가 높아졌다.
감정평가 방법에는 매매사례비교법(賣買事例比較法), 복성식(復成式) 평가법(評價法), 수익(受益) 환원법(還元法) 등 몇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수익 환원법이 가장 까다롭다.
매매사례비교법은 시점수정(時點修正)과 사정보정(事情補正)이 필요하며, 복성식 평가법은 재생산이나 재취득의 원가에서, 감가 수정(사고 경험이 있는 물건인지?)을, 차감하여 평가하며, 수익 환원법은 미래에 창출될 순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원하여 계산한다.
자동차 감정은 복성식 평가법을 적용하여 평가하였다. 그래서 차량은 감정 평가하기가 가장 쉬운 물건(物件)이다. 한번은 포니를 경락받아서, 생후 처음으로 자동차(自動車)를 소유한 일이 있었다. 물론 소인이 구매한다고 가격을 내려서 감정한 것은 아니었다. 허허!
그 차를 운전하여 집으로 퇴근하는데 첫 운전이라 그런지, 얼마나 얼었는지 모른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니 진땀으로 옷이 흥건하였다.
우리 업무는 주로 담보물 감정이었다. 어느 봄날에, 소인은 담당 직원과 감정 출장을 나갔다. 감정 업무는 복수 감정이 원칙이다.
복수(複數) 감정은 두 사람 이상이 하는 감정을 말한다. 주로 담당 책임자와 직원이 같이 수행하였다. 그래야 실수(失手)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담보물 감정은 아주 중요하고, 실수도 잦았다. 나중에 사례를 이야기하겠다.
한번은 주택(2층의 양옥집이었다)을 감정하려고 범일동(凡一洞)으로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건물 감정은 옥상에 올라가서 건물을 측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날도 옥상으로 올라가서 건물의 규모를 줄자로 재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중년의 여자분이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까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날은 따뜻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배설물(소변)이 바닥에 흘러 내리는 것을 본 우리(건물 주인과 감정 나간 우리)는 기가 질렸다. 중년의 여자는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계속 볼일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크게 기침을 하자, 그제야 여자도 알아차렸는지 기겁(氣怯)하면서, 스스로 놀라 앞으로 엎어진다. 그래서 여자가 오줌통에 빠지고 달덩이 같은 엉덩이가 오줌 범벅이 된 것은 불문가지라. 나는 이 사건을 소재로 나중에 한 편의 단편소설을 지었다.
아마도 세 들어 사시는 분이 이불을 말리려고 옥상에 나왔다가 용변(用便)이 마려웠던 모양이다. 아무리 용변이 마려워도 옥상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예의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배꼽이 요동(搖動)친다. 우~하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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