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불> 언저리를 찾아서
혼불은 전라도 방언(方言)으로 ‘사람의 혼(魂)을 이루는 바탕, 혹은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맑고 푸르스름한 빛’이라고 한다.
혼불은 또 작가 최명희(崔明姬, 1947~1998)의 대하소설(大河小說) 제목이다. 이 자리에서는 소설 《혼불》을 살펴보도록 해보자.
소설은 일제 강점기인 1930, 40년대, 매안(梅岸) 이(李) 씨 삼대 종부(宗婦)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민초(民草)들의 이야기를 적확한 문체(文體)와 빼어난 문장(文章)으로 풀어낸다.
소설의 주 무대(舞臺)는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로, 이는 작가 부친(父親)의 출생지(出生地)이자 작가의, 마음의 고향이자, 이 마을은 삭녕(朔寧) 최(崔) 씨의 500년 세거지(世居地)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緣由)로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작가 사후(死後)인 2003년 10월에 작가의 정신을 기리고 《혼불》을 기념하기 위해 <혼불 문학관>을 세웠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우리 문학의 최고봉(最高峰)이라 할만한 작품이요, 박경리의 《토지》에 버금가는 소설이다. 나는 젊은 시절, 《혼불》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새롭다.
*《혼불》에 대한 소설가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평을 들어보면,
최명희의 소설을 대하면 어느 벌족(閥族)한 가문의 종가댁(宗家宅) 잔치마당엘 들어선 것 같은 설레는 기대감과 아련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나는 곧 거기서 울을 넘는 냄새와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 이어 뜨락을 메운 질펀한 흥취(興趣)와 안방 여인네들의 정겨운 어우러짐, 그리고 사랑채 어른들의 경세담(經世談)들을 모두 한마당에서 만난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그 일문(一門)의 내력을 숨기고 있는 뒤꼍 대밭의 은밀스러운 속삭임까지도, 최명희는 아마 그 모든 것들을 묵묵히 보고 듣고, 깊이 간직해온 그 집 마당 가의 한 그루 늙은 오동나무 혹은 은행 고목(古木)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시인 고은(본명 高銀泰, 1933~현재)의 평을 들어보자.
최명희는 원고지(原稿紙) 한 칸 한 칸에 글씨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새겨넣고 있다. 그의 글씨는 철필(鐵筆)이나 만년필(萬年筆)로 쓰는 것이 아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든 정신(精神)의 끌로 피를 묻혀 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기호(記號)이다.
《혼불》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혼불은 지금 우리 문학에 횡행(橫行)하는 온갖 소음(騷音)과 기만(欺瞞)을 무섭게 경고한다. 최명희 그는 분명 신들린 작가(作家)이다.
자, 그럼 소설 《혼불》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첫 도입부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그렇게 소소(簫蕭)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울타리 삼아 뒤안에 우거져 있는 대밭이나, 고샅에 저절로 커 오르는 시누 대,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왕 댓잎의 대바람 소리는 그저 언제나 물결처럼 이 대실(竹谷)을 적시고 있었다. *하! 심상치 않다.
*제1권 33쪽이다.
백초(百草)를 다 심어도 대(竹)는 아니 심으리라
살대(화살) 가고 젓대(피리) 울고 그리나니 붓대로다
어이타 가고 울고 그리는 대를 심어 무삼하리오.
*다음 시조<(時調, 시절가조(時節歌調)>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 중에 대나무를 노래한 것임.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엿는다.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제1권 242쪽이다.
일대창파우안추(一帶滄波雨岸秋), 풍취세우쇄귀단(風吹細雨灑歸丹),
야래박근강변죽(夜來泊近江邊竹), 엽엽한성총시수(葉葉寒聲總是愁),
해석하면.
한 줄기 푸른 물결에 양쪽 언덕이 가을이라, 바람이, 가랑비를 몰아 돌아가는 배에 뿌린다.
밤사이 강변에 대숲 가까이 와서 자니, 잎잎이 찬 소리가 모두 다 수심일세.
*위 시조는 송(宋)나라 화가(畫家) 송 적(宋迪)의 그림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감상하고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시를 지었다.
**최명희(崔明姬, 1947~1998)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 기전여고와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4년에 서울 보성여고로 전근하였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별>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고,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 『혼불』(제1부)로 당선되었다. 이후 교사직을 사임하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1988년 9월 『혼불』(제2부)를 월간 《신동아》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5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 1990년 12월에 『혼불』 제1부와 제2부를 네 권으로 출간하였다가, 최종적으로 1996년 12월에 전 10권으로 한길사에서 재출간하였다.
『혼불』은 집필 기간만 17년이 넘게 걸린 작가의 투혼(鬪魂)을 담은 대작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이 작품으로 단재문학상(문학 부문), 세종문화상, 호암상(예술 부문), 여성동아대상, 전북애향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북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 작품 외에도 『만종(晩種)』, 『몌별(袂別)』, 『정옥이』, 『탈공(脫空)』 등의 단편소설도 남겼다.
그러나 이런 영예를 뒤로하고, 1998년 12월 11일 난소암(卵巢癌)으로 영면하고 말았다. 그녀의 시신은 전주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전주시에 있는 최명희 문학공원에 안장되었다. 《나무위키》, 《위키백과》 등을 참조함. 2025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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