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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작가의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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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5. 11.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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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이 어린이를 태우고 나들이 하고, 그 앞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재잘거리는 한가한 모습(세종시 한솔동 숲길)

 

이재무의 <독감>

 

한보름 동안 지독하게 앓았다. 독감(毒感)도 이젠 예전 같지가 않다. 한 사흘 앓고 나면 뚝 떨어지던 것이, 요사이는 어찌 된 일인지 보름을 크게 앓아도 여진(餘震)이 계속 남아있다.

 

병도, 속악(俗惡)한 인간을 닮아가는 것인지 갈수록 그 성정(性情)이 극악해지고 있다. ……, 하긴 왜 안 그렇겠는가, 그들도 생명체인 이상 열악한 생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타고난 생존(生存) 능력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도 이제는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우성인자(優性因子)에 의해 열성인자(劣性因子)는 자연 도태(淘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독감은 어찌나 힘이 센지 웬만한 장정(壯丁)들도 한번 걸려들면 그 앞에서는 꼼짝없이 백기(白旗)를 들고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라 한다. 백신이 소용없는, 말 그대로 슈퍼 독감인 셈이다. 필자도 이번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된통 앓았다.

 

수천수만(數千數萬)의 사나운 짐승의 이빨이 바늘이 되어, 물 젖은 휴지처럼 형편없이 구겨진 육신(肉身)을 함부로 물어뜯고 찌르고 할퀴어댔다. 한보름 그렇게 앓고 나니, 거의 탈진(脫盡)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밥맛을 잃고 그야말로 물과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만으로 연명하는 나날은 곤혹(困惑)스럽기 짝이 없었다. 걸려 온 휴대 전화도 귀찮아 전원을 끄고 세상과 단절한 채 보냈다. 아내와 아이가 학교 간 후의 텅 빈 아파트에서 고무처럼 질긴 시간을 씹으며 나는 무료(無聊)와 권태(倦怠)와 고독(孤獨)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있었다.

 

엄살 같지만 아픔을 견디는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실존적 개체(個體), 단독자라는 것을 아픔만큼 절실히 알려주는 표지도 드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유폐(幽閉)와 칩거(蟄居)를 자청한 꼴이니 새삼 누구를 원망하랴.

 

독거(獨居)란 세상 소문(所聞)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당해 본 자는 알 것이다. 허섭스레기만도 못한 세상의 잡문(雜問)으로부터 격리되는 일이 결코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는 것을, 휴대 전화기를 꺼 놓는 순간 나는 섬이 된다.

 

현대 기술문명이란 이처럼 가혹한 것인가,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니면 우리는 당장의 이웃과 친구로부터 소외와 타자(他者)를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술문명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잔인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독감이 내게 마냥 생활의 불편만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다. 독감도 병()은 병이라서 크게 앓는 동안 나는 나에게 다녀간 소중한 인연(因緣)들을 떠올렸고, 또 그간 생활을 핑계로 소홀(疏忽)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한보름 독감을 앓고 나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문을 나섰다. 앓는 내내 눈()은 내려서 세상은 군데군데 작은 도화지(桃花紙)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앓고 난 내 몸이 수척하니 세상도 덩달아 수척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表情)도 조금은 넉넉하고 풋풋하고 유순해 보였다.

 

보름을 앓는 동안 내 소원(所願)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얼른 지긋지긋한 독감 바이러스를 털어내고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그릇을 배부르게 먹는 거였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욕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앓는 동안 그것들시기(猜忌), 질투(嫉妬), 경쟁(競爭), 승리(勝利),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欲望) 따위, 얼마나 사소하고 비루(鄙陋)한 것인지 독감은 나를 나름대로 순결한 인간으로 되돌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펼쳐진 작은 도화지에 아직 때 묻지 않은 상념(想念)들을 마음의 펜으로 적으며 나는 재작년 백두산(白頭山) 가는 길에 만났던 가는 허리의 자작나무들을 떠올렸다. 된바람 속에서도 의연(依然)한 모습과 귀족의 자태를 오롯이 뽐내고 있던 그 자작나무의 대열이 자꾸만 눈에 밟혀오는 것이다.

 

세속 잡사(雜事)를 떨구어 낸 수도승(修道僧)의 모습이 그와 같았을까, 또 다르게 보면, 그들처럼 관능적(官能的)인 나무들도 없었다. 맨몸으로 강파른 추위에 맞서있던 모습에서 나는 스무 살의 강건한 육체를 떠올리고 있었다.

 

왜 하필 독감을 앓는 동안 그리고 다 앓고 나서도 뜬금없이 그 나무들만을 거듭 떠올리는 걸까. 흙바람을 이겨내고 있던 그 나무들의 수성(樹性)에서 나는 욕망을 비워낸 한없이 가벼워진 육체와 영혼(靈魂)의 존재를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독감을 앓고 나니 모든 것에서 전에 없던 여유(餘裕)가 생기고 너그러워졌다. 내 몸을 숙주(宿主) 삼아 유숙(留宿)하던 그 심술 사납던 바이러스 균에게 나는 증오(憎惡) 대신 이해와 용서의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마음이라니, 그들은 내내 내게 생에 신중(愼重)할 것과 겸허(謙虛)할 것을 주문해 오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單純)하게 살아가리라, 휴대폰을 꺼내 전원(電源)을 켠다. 오래전 사소한 오해(誤解)로 멀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생의 변방에서<독감> 전문.

 

<작가 소개>

 

이재무(李載武, 1958~ 현재) 시인은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한남대학교, 동국대학교 대학원으로 수료하고,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첫 시집 섣달그믐(1987), 생의 변방에서(2003), 등 다수와 <난고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다수를 수상하였다. 2025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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