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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작가의 < 마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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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5. 8. 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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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는 작가가 2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두고 원고지 3만 매가 넘는 분량을 혼()으로, ()로 쓴 근대 우리 민족 애환의 서사시(敍事詩).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갑오년(甲午年)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甲午改革) 직후인 1897년의 한가위부터 광복의 기쁨을 맞는 1945815일까지 48년간이다.

 

토지는 이곳 서재에서 1994815일 새벽 2시에 완성되었다. 그날 밤 작가(作家)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끝났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요. 배만 살살 좀 아프네요.>

 

박경리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여 진주에서 학교를 다였고, 1946년에 결혼했으나 195012월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고통이 창작(創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2008년 향년 81세로 별세하였다.

 

선생은 줄곧 서울에서 살다가 1980년에 이곳 원주(原州)로 이사하였다. 왜 하필 원주이었을까, 그녀는 말한다.

 

<내가 원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산천(山川)을 사랑한다는 얘기다. 원주는 원래의 대지(大地), 그러니까 산천. 본질적인 땅이란 뜻이다. 이름 그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렇다. 토지를 완성하기 위하여 작가는 원래의 토지(土地), 원주를 택한 것이다. 그것은 성공을 예감한 이주(移住)였다. 그래서 지금 이 공원이 이렇게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경리 문학 공원'은 대지(垈地)3,200평이다. 도심 속에 있는 건물치고는 작지 않다. 그리고 선생께서 집필하시던 이 집, 그 정원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것은 원주 시민은 물론이요, 온 국민을 위하여 매우 좋은 일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우리 국민뿐만이 아니라, 세계(世界) 인류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다.

 

'원주'는 군사(軍事)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敎育) 도시다. 그리고 옛날엔 선비의 고장이었다.

 

원주의 나무는 은행이다. 은행은 '수명이 길어 숭배의 나무다. 그리고 화합(和合), 단결, 영원한 전진을 의미'한다. 그리고 원주의 꽃은 장미다. 또한, 원주의 새는 꿩이다.

 

장미(薔薇)는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니 알겠는데, 꿩은 왜 꿩인지는 모르겠다. 꿩은 모양이 암수가 다르다, 이름도 다르다. 까투리는 암컷이요, 장끼는 수컷이다. 암컷은 통통하고 무난한데 수컷은 날씬하고 화려하다. 인간(人間)과는 다르다. 왜일까?……, 하하!

 

두어 시간 공원 안팎을 돌았다. 홍이공원 나무 그늘이 시원하였다. 등도 시원하고 눈()도 시원하다. 시원한 그늘에는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자리를 깔고서 햇마늘을 까고 있다. 그 옆에는 젊은 아낙이 젖먹이를 안고 졸고 있다. 참으로 한가롭다.

 

선생은 외동딸 하나를 둔 청상과부(靑孀寡婦). 그녀의 사위가 김지하<김지하(金芝河), 1941~2022), 본명, 김영일(金英一)> 시인이다. 선생은 외롭고 고단한 삶을 문학으로 채워 나갔다.

 

1955계산으로 문단에 등단(登壇)한 이후 53년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토지외에도 수도 없이 많다.

 

불신 시대(1957), 표류도(1959), 김 약국의 딸들(1962),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4)그리고 많은 시집도 있다. 또 대학에서 강의도 하셨다.

 

선생은 떠나셨다. 하지만, 잿빛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선생의 초상(肖像)은 변함이 없다. 선생은 거목(巨木)이다. 거목은 그늘이 넓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밑으로 모인다.

 

평일인데도 관람객(觀覽客)이 여럿 있다. 초여름 해거름의 그림자가 늘어진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나는 선생의 숨결을 느끼면서 홍이 동산을 빠져나왔다.

 

<임은 가셨지만, 아직 우리는 차마 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독백(獨白)을 마시면서 핸들을 돌렸다.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후기)

 

*나는 인생을 3기로 나누고 싶다. 1기는 출생(出生)하여 결혼하기 전까지의 성장기(成長期)이고, 2기는 결혼한 이후부터 직장에서 은퇴(隱退)할 때까지이고, 3기는 은퇴 후의 시기이다. 대략 기간으로 따져보면, 1기가 30, 2기도 30, 3기는 스스로 건강 관리하기 나름이겠는데, 대략 30,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 90년 정도가 아닐까 한다.

 

*나는 11녀의 두었다. 큰아이는 아들이고 둘째가 딸인데, 딸과 아들이 뒤바뀌었으면 좋겠으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그보다 아쉬운 것은 여() 손자가 없다는 것이다. 큰아이도 아들만 둘, 딸도 아들만 둘이다. 이 또한,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어허허.

 

원주에서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 노트북에 글쓰기를 마치니 다음 날 새벽 2시였다. 마침, 그녀가 원주(原州)에 있은 대학에 입학(入學)할 때 원주까지 간단한 이삿짐을 실어다 준 적이 있었다. 이후 딸아이는 4년간을 원주에서 살았다.

 

그러니 이래저래 우리 가족도 원주가 생소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다. 우리가 토지 문학관을 찾은 날은 200968일이었다. 농협(農協)에서 은퇴한 다음 해다. 오래된 일기장에 적혀있다. 나는 토지 문화관을 관람한 이후부터 문학(文學)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글은 2010년 농협 동인지에 투고 게재된 것을, 2024826일에 2차 수정했는데, 이번에 다시 재구성하였다. 역시 글은 퇴고(推敲)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切感)하고 있다.-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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