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의 <마음>
마음이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無間地獄)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 시인의 <마음> 전문.
*신체는 껍질이요 마음은 본질이다. 무릇 본질이 옳아야 껍질도 따라올 것이다.
<시인 소개>
소설가로 더 잘 알려진 박경리(朴景利, 1926~2008)는 1945년 <진주공립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김행도(金幸道, 1923~1950)와 결혼, 1950년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 가정과 졸업,
같은 해 황해도 <연안 여자중학교>에 근무하는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18살 나이에 광복을 경험하고 20살 나이에 시집을 가고, 24살에 취업하여 선생님이 되었다가 29살에 작가가 되었다.
참고로 남편 김행도는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간 뒤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시인과 나와의 관계>
2009년 6월 나는 아내와 강원도 원주(原州)로 나들이를 나갔다. 박경리 문학 공원과 토지 문화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토지>는 박경리의 대표적 대하소설(大河小說)이다. 아내도 나도 과거에 <토지>를 감명 깊게 읽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토지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참고로, 나는 아내를 직접 부를 때는 ‘여보’라 하고, 이렇게 책에서 부를 때는 어부인(어렵고 까칠한 부인, 때로는 어질어 빠진 부인)이라 한다. 그것은 그녀와 내가 평생(平生)을 살아오면서 그녀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초여름의 푸르름과 끈적거리는 땀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는 박경리 선생이 생(生)의 마지막 순간들을 지내셨다는 원주시 흥업면 '토지 문화관' 입구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문화관은 2층짜리 앞 건물과 3층짜리 뒤쪽 건물이 산자락에 고즈넉이 앉혀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선생께서 거처하셨던 아담한 주택(住宅)이 숲속에 숨은 듯 입구는 잠겨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앞 건물과 뒤 건물 사이에 붙은 식당 동(棟)에서 문학 지망생(志望生)들로 보이는 대여섯이 식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2층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현관(玄關)에 큰 북이 우리를 맞이한다. 지역 예술 단체장께서 기증하셨다고 되어 있다. 왜 북인가! 시종(始終)을 알리는 소리 아니겠는가!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아담한 강의실(講義室)이 있고, 그 강의실 출입문(出入門) 위쪽 벽에 커다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는데, 선생과 그의 어머님 두 분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 가히 미인들이시다. 선생은 육칠 세의 꼬마 소녀다. 3~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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