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서 1층 현관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선생께서 생시에 쓰시던 유품(遺品)들이 유리창 안에 가지런히 전시(展示)되어 있었다. 안경, 만연필(萬年筆), 재봉틀, 옷, 담배쌈지, 국어사전 등이다. 모두 오래된 물건이다. 손때가 반질반질하다.
<글이 쓰이지 않을 때는 저 재봉틀을 돌리셨다지?>
내가 어부인에게 말하니, 그녀는 재봉틀보다는 다른데 관심이 있는 듯, ……, 선생께서 손수 만든 담배쌈지를 발견하고서 놀란다.
<선생님께서 담배도 피우셨나?>
평생을 홀로 사셨으니 오죽 고독하셨을까. 나는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답했다.
벽에는 선생의 여고 시절 진주 촉석루(矗石樓)를 배경으로 남강(南江) 변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마침,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기이하다.
촉석루를 자주 찾은 우리는 그 사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암(義巖)과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義妓祠)가 여기 어디쯤 있을 건데 아쉽다 했다.
논개<(본명, 주논개(朱論介?, 1574~1593)> 할머니가 임진왜란 때 왜장<(倭將,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 ?~1593)>을 껴안고 투신한 그 바위와 사당 말이다.
아마 선생께서 이 사진을 찍을 때 의암<(義巖,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을 어찌 보시지 않았겠는가. 확실히 보시고도 못 본 척, 하셨으리라! 하도 애잔하였으니……,
2층과 3층은 출입이 제한되어 1층만 보고 나와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3층 건물 뒤쪽에는 아담한 야외(野外) 공연장이 잘 꾸며져 있었다. 돌층계의 객석(客席)에는 나무 그늘로 시원하지만, 객석 앞의 공연(公演) 무대는 뙤약볕이 따갑다.
<너무 불공평해. 객석보다 공연자들을 생각해야지?>
어부인이 한마디 한다. 나는 속으론 수긍(首肯)하면서도 겉으로는
<지금이 여름이니 그렇지, 겨울이면 다를 거야. 세상에 불공평은 없을걸.>
농(弄)을 쳐본다.
'토지 문화관' 건물과 선생의 주거동(住居棟) 사이에는 찔레꽃 넝쿨이 사람 키를 넘긴다. 가시 난 줄기 장미들도 주위를 지키고 있다.
초입에 '토지 문화관'이라 쓴 표지석 옆에서 산세를 둘러보니,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솟구치는 듯하다. 눈을 어깨높이로 내리니 야트막한 밭떼기들이 푸른 옷을 입고 있다. 옥수수, 땅콩, 고구마, 고추가 제각기 햇볕에 색색거리고 있다.
오른쪽 아래로 지방도로와 맞붙여 아담한 2층 건물 하나가 붉게 물들어 있다. '토지 문화관'의 부속 건물이리라. 선생께서 생전(生前)에 작가나 그 지망생(志望生)들을 위하여 창작의 산실(産室)로 제공하기 위한 공간들이다.
우리나라에 그 많은 문학인 중에 그 누가 후학(後學)들을 위하여 이러한 배려가 있었던가? 생각하니 다시 한번 선생이 그리워진다.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푸르른 산야(山野) 속 선생의 숨결을 뒤로하고, 차를 몰아 원주 시내 단구동(丹邱洞)에 있는 '박경리 문학 공원'으로 향하면서 생전에 선생을 한 번이라도 뵙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명복(冥福)을 빌었다.
서울에서 달려오는 중간중간에 군것질해서인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점심은 때워야 할 것 같아 문학(文學) 공원에 차를 세우고 주변에 있는 <갯바위 해물 칼국수> 집에서 얼큰한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칼국수는 어부인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飮食)이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아담한 아파트와 접해있었고 단정하고 깔끔하였다. 정원(庭園)도 꽤 넓다. 입구(入口)에는 토지의 주요 장면과 작가의 변을 쓴 세로로 된 현수막들이 세워져 있다.
하나같이 가슴을 쓰리게 하는 아름다운 글들이다. 그 글 중에 특히 선생께서 1973년 6월 3일 자에 토지 1부를 끝내고 적으신 소감(所感)이 인상 깊다. 그 글 마지막 부분을 적어본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抵抗)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挑戰)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그것은 더욱 험난한 길이 남아 있다는 예감(豫感)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고독의 심연(深淵)에서 오직 펜만을 붙들고 맨몸으로 헤엄치는 그 모습이 아닌가. 눈에 선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2층 전시관으로 올랐다. 방명록(芳名錄)에 이름 석 자를 올리고, 내부를 둘러보니, 토지 1~5부의 시대적 배경과 큰 줄거리가 사방의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벽 앞쪽으로는 선생의 시(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전시관 중앙 기둥에는 토지의 활동무대가 된 평사리(平沙里), 용정(龍井), 서울, 진주 등이 표시된 지도와 그 위에 그 지역에서 활동한 내용이 적혀있다.
한참을 토지 속에 푹 빠져 헤매고 나니 그 옛날 젊은 시절 토지(土地) 1부를 붙들고 울고 웃던 아련한 추억(追憶)들이 이곳을 평사리인가? 용정인가? 혼동케 하였다.
꿈을 꾸듯 평사리 마당을 지나 홍이 동산과 용두레 벌을 한 바퀴 돌아 선생께서 1980년부터 28년 동안 살면서 토지를 완성해 낸 아담한 별채인 흰 양옥집 대문(大門)을 들어섰다.
마당은 넓었다. 마당 가의 아주 작은 연못에 푸른 연잎이 헤엄치듯 떠 있고, 모퉁이 남새밭엔 고추, 아욱, 가지의 꽃잎들이 나불거리고 있었다. 아늑하고 여유로운 남향(南向)집이다.
마당 저편 소나무 그늘에서는 건장한 청년(靑年)이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있다. 그것도 서서 읽고 있다. 아마 『토지』가 아닐까 한다. 참 한가로운 풍경들이다. 3~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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