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시(誇示)의 예식(禮式) 문화,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열(十)을 가진 사람은 백(百)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 하고,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려 한다. 종교인은 없고 종교인처럼 보이려는 사람들만 득실거린다. 이것이 자본주의 때문인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는 적어도 돈에 대해서는 정직(正直)하다. 주식회사에서 주주권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가진 주식의 수량만큼 권리(權利)와 의무(義務)가 부여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진 것보다 더 가진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가. 심히 궁금하다.
이런 이상한 현상을 자본주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겠다. 아마도 문화(文化)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잘못된 문화다. 소위 개발 시대의 졸부문화 말이다.
졸부(猝富)란 본래는 가진 것이 부족했는데 개발의 과실이 갑자기 떨어져 부자가 된 사람으로, 그들이 옛날 생각은 잊어버리고(?) 흥청망청 돈을 뿌리는 것을 두고 생긴 말이리라.
보상 심리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보상(補償) 심리는 돈 떨어지면 사라지는 심리다. 그런데 돈 떨어져도 그만두지 못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해보니 먹혀든다.
아,……, 즐겁다. 더 해보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것이 자기과시(自己誇示) 심리로 발전한다. 마약 같은 것이다. 돈 떨어지면 빛을 내어서라도 계속하는 것이 마약이다.
그 자기과시 심리의 최전방이 바로 결혼식 문화가 아닌가 한다. 결혼, 시즌(Season)에는 주말이면 사람들은 두서너 곳의 예식장(禮式場)을 다닌다. 가는 곳마다 사람으로 초만원이다. 사람만 만원인 것이 아니다. 승용차도 만원이고 화환도 만원이다.
예식이 시작되기 수 시간 전부터 사람 키보다 큰 화환(花環)들이 홀 로비로 줄줄이 들어서고, 축하객은 접수대 앞에 또 줄줄이 늘어서서 봉투를 건네고, 방명록(芳名錄)인지 망명록인지에 자기 이름자를 자랑스럽게 큼지막하게 써 올린다.
예식이 시작되면, 또 줄줄이 들어서는 축하객을 신랑 신부의 부모들은 눈길도 마주칠 여유도 없이 손만 잡는다. 정신이 없다.
드디어 예식은 시작되었지만, 그 큰 식장이 다 차는 경우는 드물다. 빈자리가 더 많아 썰렁하다. 줄줄이 늘어선 하객(賀客)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식당(食堂)으로 또 다른 식장(式場)으로,…… 아니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빈자리를 쳐다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프다. 그 자리가 예식과 피로연(披露宴)을 겸하는 고급 식장이라면 더욱 아깝다. 사람을 대접한 게 아니라 빈 의자마다 십만 원이 넘는 음식값을 주어야 하니 너무 억울하다.
결혼이 아무리 배타적 사회계약이라 하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를 알려서 자기의 영역을 침범치 못하도록 못을 박아야 한단 말인가. 자기과시에 체면(體面)치레가 공모한 모순(矛盾)의 굿판, 가식(假飾)의 굿판이다.
이 굿판에 스스로 참여한 우리들이야 자초(自招)한 일이지만, 입도 달싹 못하는 그 많은 화환(花環)은 누가 치우며 좌판(坐板)에 깔린 음식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도 큰 걱정이다.
결혼식은 인륜의 가장 성스러운 의식이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다. 출산율(出産率)이 문제인 현대에는 결혼이 더욱 고귀하고 소중해서 권장되어야 할 축제다. 자연히 축제(祝祭)의 주체는 부모도 아니고 하객도 아닌 결혼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예식을 보면 주인공은 한낱 애완용(愛玩用)에 불과하고 허례와 허식이 판을 치고 있으니, 우리들이 인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인 척하며 살고 있을 뿐이고,……,
오죽하면 40여 년 전에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까지 만들어 허례허식(虛禮虛飾)을 버리고 건전한 가정의례를 하자고,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도 그 폐해는 늘어만 가니 사회가 퇴보하는가……,
의식은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기성세대들이다. 의식과 행동의 불일치, 오랜 고질병이다. 언고행(言顧行)이요 행고언(行顧言)은 중용 속의 구호일 뿐 우리들은 모른다.
세상은 실업자(失業者)들로 넘쳐나고 학생들은 등록금 반값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청년들이여! 등록금 내리라는 투쟁도 좋지만, 결혼식 문화도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들도 불원간(不遠間) 결혼이라는 축배를 들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이제 우리 세대를 믿지 마라. 우리들은 체면(體面)과 과시 의식에서 벗어나기는 너무 늦었다. 우리는 이미 지배 이데올로기에 길들어진 구제(救濟) 불능이다.
하지만 우리라고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관성(慣性)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용한 마을회관 같은 데서 깊은 정 나누는 피로연, 먹지 않은 하객의 밥값을 아껴 멋진 신혼여행(新婚旅行)을 떠나는 아들딸들의 모습을, 우리는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으흐흐~흥, 2010년 10월.
*그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주례(主禮) 선생도 사회자(司會者)도 없는 결혼식은 물론이요, 피로연도 간단한 커피 한잔으로 끝내는 결혼식을 자주 만난다. 결혼식 문화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대로 가는 사회가 된 것이리라! 2025년 8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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