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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선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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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5. 7. 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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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퇴장하는 회장님 한호선(韓灝鮮) 스토리

 

 

협동(協同)의 본산 서대문의 오후는 한산했다. 오전에 치른 한바탕 잔치(동인회 총회) 속의 노병들이 꽃샘바람처럼 사라진 광장엔 오피러스 한 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빌딩을 빠져나오는 그의 어깨는 추워 보였으나 얼굴은 편한 모습이었다.

 

그 얼굴 위로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오후의 햇살을 실어 얹었다. 스스로 걸어서 퇴임(退任)하는 회장의 뒷모습에서 나는 한 인간을 보았다.

 

현직(現職) 때 나는 그와 인연이 없었다.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직연<(織緣) 한 사무실에 근무한 경험)>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와 단독으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니 아마도 그는 나를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젊은 시절 나는 그를 통하여 농협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키웠다. 그것은 당시 누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숙명(宿命) 같은 것이었다.

 

내가 부산지역본부에 초급(初級) 책임자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새벽에 우리는 중앙본부의 높은 분<(당시 중앙회(中央會) 이사(理事)>의 특강을 듣기 위하여 강당으로 모였다. 강당에 들어서는 직원들은 편치가 못했다. 모두 들, 불만에 찬 얼굴들이었다.

 

난리(亂離)가 난 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출근하라니 나 역시도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조직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그의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높고 깊은 통찰력과 설득력 그리고 오장육부(五臟六腑)에서 차오르는 열정(熱情)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첫 만남이었다.

 

이후 나는 밑에서 그를 주시했다. 나의 예상과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1988, 드디어 그는 창립 이래 최초로 공채 1기 서기(書記)에서 조직의 총수가 된 것이다. 그는 거기서 거치지 않고 1990418일 자 직선제 민주농협 중앙회 회장에 당선되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그러나 일단은 거기까지였다. 세월이 흘러 199436일 자 주요 일간지 머리기사에서 그는 처참(悽慘)하게 깨어진다. 그날의 기사를 보자.

 

-한호선 농협(農協) 회장 구속, 비자금 3억 원 조성. 국회의원 등 백여 명에게 줘, 중앙회 임원, 각도의 지회장 등 곧 소환- 그 기사 옆으로 농협 비리 전면 조사. 인사. 대출 중점!

 

하지만 그는 2년 후 오뚝이처럼, 화려하게 재기(再起)에 성공한다. 199615대 국회로 당당히 입성한 것이다. 그의 의정활동 4년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예고하는 듯했다.

 

1997년 말 DJP연합 정부가 탄생할 때 그는 대통령 인수위의 멤버가 되는 등 농협을 떠나서 이제 그의 전공을 살려 행정부(行政府)로 새 둥지를 트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잠시 방황한 그는, 2003년에 다시 농협으로 돌아왔다. 현직이 아닌 퇴직(退職) 동인회장 자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농협은 옛날 그가 근무하던 시절의 농협은 아니었다.

 

그래도 정대근(鄭大根, 1944~현재) 회장 시절엔 대접을 받는 듯했으나 최원병(崔圓炳, 1946~현재) 회장이 들어선 이후로는 반목과 홀대로 일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로서는 안타깝고 참을 수없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임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즈음, 예전에 그를 가까이 모셨던 인사들이 동인회장 그만두시라고 충언(忠言)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집착(執着)을 버리시라고, 건강을 챙기시라고, 또 다른 이유로……,

 

그러나 그는 정도가 아니라고 버티었고, 결국 지난해 3, 농협법(農協法) 개정에 관한 의견 차이로 크게 감정을 상하게 되었다. 정통 협동조합주의자인 그로서는 통탄(痛歎)을 금치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키운 협동조합인데 누가 망치려 하느냐고,

 

드디어 그는 지난해 11, 현직 회장 선거 직후 동인회장직 사의를 표하였다. 하지만 많은 동인들이 그의 진정성(眞情性)을 의심하였었다.

 

당시 동인회 이사회(그때 나도 동인회 이사였다)에서 그의 의견을 거부한 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절대로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여론에 나 역시 동의(同意)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빗나갔다. 지난 25, 동인회(同人會) 사무실에서 차기 회장 추천위원회가 열렸었다. 그날 그는 자기는 아무것도 한 일도 없이 회장을 너무 오래 하였으니 이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동인들의 의견도 수렴(收斂)하였고,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차기 회장으로 김성기(金聖基, 1941~현재) 부회장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부 위원이 절차상 잘못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였고, 거기에 몇 위원이 재차 반론을 하는 등 회의 분위기는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추천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소신을 관철(貫徹)시켰다.

 

그는 오늘 총회(總會)에서도 동인회장 자리는 선거로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심한 반대의견을 경청하는 인내심도 보였다. 그는 특유의 뚝심을 발휘했다.

 

나는 그의 논리(論理)가 옳은지 그런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걸어온 길과 그가 한 말들을 기억해 보면 그로서는 그 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다는 그의 진정성(眞正性)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그동안 걸어온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호선, 청주한씨(淸州韓氏) 장헌공파 홈피에는 그를 문양공의 17대손으로, 소탈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최선을 다하는 추진력의 소유자로 그리고, 가문을 빛낸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온당한 평가다. 그는 현직 회장 6, 국회의원(國會議員) 4, 그리고 동인회장 9년이라는 앞으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기록을 세웠다.

 

그의 공과를 논할 시점도 아니고 그럴 안목도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 볼 때 그는 거인(巨人)이다. 그는 반대의견에도 관대(寬大)하였고 그를 따르는 사람을 버리지 않았고, 소신을 관철하려는 끈기도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최대한 낮추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이룬 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술회(述懷)했다. 그는 소통과 아집을 동시에 가진 정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는 작은 거인이다.

 

스스로 물러나는 회장, 그것은 우리 농협 맨 이면 누구나 바라던 일이다. 동인들의 우려(憂慮)를 깨고 그는 건강한 몸으로 걸어서 회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비록 현직이 아닌 퇴직 자리라 하더라도 그것은 큰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그 용기(勇氣)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한호선. 그이만큼 농협(農協)을 위해 일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그가 할 몫을 다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회장님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20132.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5727, 한호선 회장님은 향년 88세로 작고하셨다. 오늘이 발인일(730)이다. 깊이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회장님은 1936928, 서울에서 출생하여, 원주 농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2년 강원도 양구군 농협 서기로 입행하였으며, 이후 서울대 행정학 석사, 명지대 행정학 박사를 수료하였다. 이하 경력 등은 생략함. 2025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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