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혈액은 뼛속에 있는 골수(骨髓)에서 만들어진다. 혈액은 적혈구(赤血球), 백혈구(白血球), 혈소판(血小板)이라 불리는 입자(세포 성분)와 혈장(血漿)이라는 액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혈액은 사실 뼛속의 골수에서 매일 쉬지 않고 만들어진다. 혈액을 만드는 골수는 말랑말랑한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조직이다.
그렇지만 모든 뼈에서 혈액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몸에서는 머리를 지키는 머리뼈, 심장(心臟)과 폐(肺)를 지키는 갈비뼈, 가슴을 지키는 복장뼈 등에서 혈액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기는 거의 모든 뼈에서 혈액(血液)이 만들어진다.
혈액은 매일 새로 만들어지는데도 수명이 있다. 몸무게 50kg인 사람의 경우 대략 4개월이면 혈액이 새로 교체(交替)된다. 수명을 다해 불필요해진 혈액은 소변과 대변에 섞여 몸 밖으로 배출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3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4월 11일(계축/5월 19일)
맑다. 우수사가 와서 만나보자마자 그대로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정여흥(鄭汝興)이 들어왔다. 또 변존서(卞存緖)의 편지를 보니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우 기쁘다.
4월 12일(갑인/5월 20일)
맑다. 장계(狀啓, 지방관이 임금께 올리는 글)의 회답 18통과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우의정 정탁(鄭琢, 1526~1605)의 편지와 자임<(子任, 이축(李軸)> 영감의 답장이 왔다.
군량을 독촉할 일로 아병(牙兵, 군사의 일종) 양응원(梁應元)을 순천과 광양으로, 배승련(裵承鍊)을 광주와 나주로, 송의련(宋義連)을 흥양(興陽)과 보성으로 김충의(金忠義)를 구례와 곡성으로 보냈다.
삼도의 중위장 성윤문(成允文), 김완(金浣, 1546~1577), 이응표(李應彪)가 견내량에서 돌아와 ‘적들이 물러갔다’고 보고했다. 경상 수사 배설(裵楔, 1551~1599)은 밀포(密浦, 한산 두억)로 나갔다.
4월 13일(5월 21일)
흐리니 비도 내렸다. 세 조방장이 함께 들어왔다. 장계와 편지 4통을 봉하여 거제 군관 편에 올려보냈다. 저녁에 고성 현령 조응도(趙凝道, ?~1597)가 와서 왜적의 일을 보고하고, 또한 계획을 말하기를 ‘웅천의 군사를 청하여 야간에 습격하려고 한다’고 했다. 비록 믿을 만하지는 않으나 그러라고 허가했다.
4월 14일(병진/5월 22일)
잠깐 비가 내렸다. 아침에 흥양(興陽) 현감이 교서에 숙배례(肅拜禮)를 행했다.
4월 15일(정자/5월 23일)
흐리다. 여러 가지 장계와 단오절 진상품을 봉해 올렸다.
4월 16일(무오/5월 24일)
종일 큰비가 내렸다. 비가 흡족히 오니, 올해 농사는 큰 풍년임을 점칠 수 있겠다.
4월 17일(기미/ 5월 25일)
맑으나 높새바람(동북풍)이 크게 불었다. 아침밥을 먹고 대청으로 나아가 세 조방장과 활 15 순을 쏘았다. 경상 수사 배설(裵楔, 1551~1599)이 여기에 왔다가 해평장(海平場, 통영시 봉평동)의 논밭 일구는 곳으로 갔다. 미조항 첨사(僉使)도 와서 활을 쏘았다.
주) 높새바람은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차고 습기를 띤 한대 해양성 기단인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동해까지 확장되어 정체하다가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불어 내리면서 푄 현상을 일으켜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부는 것이다. 높새바람이 불면 기온이 높아지고 대기가 건조해진다.
4월 18일(경신/5월 26일)
맑다. 아침밥을 먹고 대청으로 나아가 우수사와 경상 수사, 가리포 첨사와 미조항 첨사(僉使), 웅천 현감과 사도 첨사, 경상 우후(虞候)와 발포 만호 등 삼도의 장수들이 모두 모여 활을 쏘았다. 권준(權俊)과 신호(申浩, 1539~1597) 두 조방장도 모였다.
4월 19일(신유/5월 27일)
맑다. 조방장 박종남(朴宗男, ?~1601)이 적을 수색하고 토벌하는 일로 배를 탔다. 아침에 청혼하는 글을 쓰고 아울러 조카 해(荄)의 혼례 물품을 준비했다.
4월 20일(임술/5월 28일)
맑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에게 가서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이영남(李英男, ?~1598)이 장계의 회답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남해 현령을 효시하라’고 했다. -15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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