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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32

서평

by 웅석봉1 2025. 4. 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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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속에 물이 들어가면 왜 아플까?

 

매우 민감한 콧속 점막(粘膜)이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콧속은 신경, 얇은 점막, 수많은 모세혈관(毛細血管)이 지나가는 엄청 민감한 부위다. 수돗물과 수영장 물은 우리 몸의 수분과 전혀 다른 성분(成分)이어서 코에 들어오면 코가 얼얼하며 아픈 느낌이 든다.

 

수돗물에는 염분이 없는데, 수영장 물은 소독을 위해 염소(鹽素)를 사용한다. 우리 몸의 수분과 완전히 다른 성분이다. 우리 몸의 수분은 가깝고 따뜻하면서 약간(若干) 짭짤한 물은 콧속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다. 그래서 꽃가루 알레르기 등을 치료하기 위해 코를 세정(洗淨)할 때는 우리 몸의 수분과 염도가 같은 생리식염수(生理食鹽水)를 사용한다.

 

고추냉이를 먹으면 코가 뻥 뚫리는 듯하면서 얼얼한 자극(刺戟)이 느껴진다. 자극이 너무 강한 냄새는 물처럼 점막 신경(神經)과 반응해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14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818(계해/101)

 

흐리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원수 권율(權慄, 1537~1599)이 청하여 그에게로 가서 간소한 술상으로 한잔했는데, 그만 크게 취하여 돌아왔다. 경상 수사는 만취하여 드러누워 오지 못했다. 나만 곤양 군수, 거제 현령, 소비포 권관 등과 함께 배를 돌려 삼천포 앞바다로 돌아왔다.

 

819(갑자/102)

 

맑다가 저물녘에 잠깐 비가 내렸다. 새벽에 사량(蛇粱, 통영시 사량면) 뒤쪽에 이르니 원균(元均, 1540~1597) 수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칡을 60()을 캐었는데, 그제야 원() 수사가 돌아왔다. 저녁나절에 출항하여 당포(唐浦, 통영시 산양면 삼덕리)에서 머물렀다.

 

820(을축/103)

 

맑다. 새벽에 출항해서 진영에 이르렀다. 우수사와 조방장이 와서 만났다. 정응운(丁應運) 조방장이 곧바로 돌아가고 우수사와 장흥 부사, 사도 첨사, 가리포 첨사, 충청 우후(虞候)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저녁에 피리를 불며 노래를 부르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오늘 여러 가지로 미안한 일이 많았다. 충청 수사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여 흥양(興陽)으로 돌아갔다.

 

821(병인/104)

 

맑다. 외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곤양 군수와 사도 첨사, 마량(馬梁) 첨사(僉使)와 남도포(南桃浦) 만호, 영등포 만호(萬戶), 회령포(會零浦) 만호(萬戶), 소비포 권관이 왔다. 양정언(梁廷彦)이 와서 만났다.

 

822(정묘/105)

 

맑다. 나라 제삿날(성종비 정현왕후 윤 씨)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 우우후(右優候)가 왔다. 낙안 군수와 사도 첨사도 왔다가 돌아갔다. 저녁에 곤양 군수와 거제 현령, 소비포 권관과 영등포 만호가 와서 밤이 깊도록 의논하고 돌아갔다.

 

823(무진/106)

 

맑다. 아침에 공문 초안을 잡았다. 식사 후에, 사정(射亭)에 올라, 공문을 완성하여 보내고 활을 쏘았다.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었다. 장흥 부사와 녹도 만호가 왔다. 저물녘에 곤양 군수, 웅천 현감, 영등포 만호, 거제 현령, 소비포 권관 등이 왔다가 저녁 8시경 헤어졌다.

 

824(기사/107)

 

맑다. 각 고을에 수군을 징발하는 일로 박언춘(朴彦春), 김륜(金倫), 신경한(申景漢)을 내보냈다. 조방장 정응운(丁應運)이 돌아갔다. 저물녘에 소비포 권관이 왔다.

 

825(경오/108)

 

맑다. 아침에 곤양 군수와 소비포 권관을 불러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사도 첨사가 휴가를 얻어 신고하려고 왔는데 ‘97일까지는 돌아오라고 당부하여 보냈다.

 

현덕린(玄德獜)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신천기(申天紀)도 추수하는 일로 돌아갔다. 느지막이 흥양 현감이 돌아왔다. 사정(射亭)으로 가서 활 6 ()을 쏘았다. 정원명(鄭元溟) 들어왔다고 한다.

 

826(신미/109)

 

맑다. 아침에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써 보냈다. 흥양(興陽)의 포작인(鮑作人, 전복을 따는 사람) 막동(幕同)이란 자가 장흥의 군사 30명을 몰래 빼내어 그의 배에 싣고 도망을 갔다. 그래서 잡아다가 처형하고 그 목을 높은 곳에 내 걸었다. 느지막이 사정에 올라 활을 쏘았다. 충청 우후(虞候)도 와서 같이 쏘았다. *예나 지금이나 군사를 사적으로 빼내는 일은 큰 사건이어서 엄히 다스린 듯하다. -13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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