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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28

서평

by 웅석봉1 2025. 4. 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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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는 왜 날까?

 

콧속 점막(粘膜) 아래에는 가느다란 혈관이 다량으로 분포해 약간의 자극으로도 찧어질 수 있다. 콧속은 점막이라는 축축한 막으로 덮여 있다. 그 일부, 특히 얇은 부분은 외상(外傷)이 생기기 쉬운 키젤바흐(Kiesslbach, 콧구멍 앞쪽 밑부분) 부위(部位) 아래에 가느다란 혈관이 다량 분포해 가벼운 마찰이나 자극으로도 코피가 날 수 있다. 참고로 코피가 났을 때 코 전체(全體)를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면 빨리 멎는다.

 

코막힘 등 코 상태에 이상이 생기면 코 혈관으로 혈액(血液)이 집중되어 혈관이 팽창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약간의 자극만 줘도 혈관(血管)이 찧어질 수 있다. 코가 막혔을 때 지나친 자극을 주면, 평소보다 더 코피가 나기 쉬우니 주의하자.

 

초콜릿이나 견과류(堅果類)를 먹으면 코피가 나기 쉽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초콜릿과 견과류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혈액 순환(循環)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이런 말이 생긴 것 같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10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718(갑오/92)

 

맑다. 장홍유(張鴻儒)에게 누각 위로 올라가자고 청하여, 같이 올라가서 같이 점심을 먹고 같이 술도 몇 잔 했다. 그러면서 내년 봄에 배를 타고 같이 제주도에 갈 일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그러니 우리 수군과 합세하여 적을 섬멸하자고 간곡히 설득하였다. 그러고 나서 초 저녁에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719(을미/93)

 

맑다. 아침에 장홍유(張鴻儒)에게 환영 예물을 올리니, 계면쩍은 표정으로 주저하다가 주시는 물건이니 매우 감사하게 받겠다면서 즐거워했다. 충정 수사도 이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우수사도 역시 내가 준 예물과 비슷한 선물을 드렸다.

 

점심밥을 먹고 경상 원(元均) 수사가 홀로 술 한 잔을 드리는데, 소반 위에 반찬은 많기는 하나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자()와 별호(別號)를 물어보니 써서 주는데, 자는 중문(仲文)이요, 호는 수천(秀川)이라고 했다. 촛불을 밝히고 다시 의논하다가 헤어졌다. 비가 많이 내릴 기세여서 배에서 내려와 잤다.

 

720(병신/94)

 

맑다. 아침에 통역관이 와서 명나라 장수가 남원에 있는 총병관 유정(劉綎)이 있는 곳에는 가지 않고 곧장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명나라 장수에게 처음에 파총(把憁)이 남원에 온다기에 총병관에게 전해졌는데, 만약 가지 않는다면 다른 말들이 있을 것이니 바라건대 가서 만나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자 장홍유(張鴻儒)가 나의 말을 전해 듣고 과연 옳은 말이라 하며 말을 타고 혼자 가서 만나본 후에 군산(群山)으로 가서 배를 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파총이 내 배로 와서 조용히 대화하고 이별의 잔을 서로 권했다. 파총(把摠)7잔을 마신 뒤 닻줄을 풀고 함께 포구 밖으로 나가 송별의 서운함을 달랬다.

 

그 후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 충청 수사, 순천 부사. 발포 만호, 사도 첨사와 같이 사인암(舍人巖,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수륙마을 남쪽의 거인 바위)으로 올라가 종일 취해서 즐기고 돌아왔다.

 

721(정유/95)

 

맑다. 아침에 명나라 장수와의 문답 내용을 공문으로 작성하여 원수 권율(權慄, 1537~1599)에게 보냈다. 느지막이 마량 첨사(僉使)와 소비포(所非浦) 첨사(僉使)가 왔다. 발포 만호가 와서 복병을 보내기로 협의하였다. 저녁에 수루에 올랐는데 순천 부사가 왔다.

 

오후에 흥양(興陽)의 군량선이 들어왔다. 군기를 세우기 위하여 색리와 선주의 발바닥을 쳤다. 저녁에 소비포 권관이 와서 하는 말이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균(元均, 1540~1597) 수사로부터 곤장 서른 대를 맞았다고 했다. 몹시 해괴한 일이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가 군량 20섬을 빌려 갔다.

 

722(무술/96)

 

맑다. 아침에 장계 초고를 수정하였다. 임치 첨사(僉使)와 목포 만호가 왔다. 느지막이 사량(蛇梁) 만호(萬戶)와 영등포 만호가 왔다. 오후에 충청 수사와 순천 부사, 충청 우후(虞候)와 이영남(李英男, ?~1598)과 함께 활을 쏘았다. 저물녘 수루(戍樓)에 올라 밤이 되도록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128)-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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