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뭘까?
비행기나 자동차 등 좁은 좌석에 장시간 앉아 있으면 다리 정맥에 혈전(血栓), 생길 수 있다. 이 혈전이 혈관(血管) 속을 흐르다가 폐 등의 혈관을 막으면 이코노미 클래스(Economy Class)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장거리(長距離) 비행 시 좁은 좌석(座席)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발생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症候群)이 발생하면 다리와 무릎이 붓거나 장딴지 등에 심한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또 혈전이 폐를 막아 급성 호흡(呼吸) 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예방하려면 걷거나 간단한 체조(體操)로 몸을 움직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장딴지를 주무르거나 발꿈치를 올렸다 내리는 간단한 운동(運動)을 하면 효과적이다.
그밖에 규칙적인 수분(水分) 보충, 옷 느슨하기 풀기, 잘 때 다리를 받침 위에 올리기 등을 일상화해 혈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08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7월 7일(8월 22일)
저녁에 비를 뿌렸다. 충청 수사는 그의 어머니 병환이 깊다고 아뢰고 들어오지 않았다. 우수사와 순천 부사, 사도 첨사와 가리포 첨사, 발포 만호와 녹도 만호가 함께 활을 쏘았다. 이영남(李英男, ?~1598)이 배를 거느리고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곤양으로 나갔다. 잡혔다가 돌아온 고성의 보인(保人)을 문초했다. 보성 군수가 왔다.
주) 보인(保人)이란 군대에 직접 복무하지 않은 대신 쌀이나 배를 바치는 남자를 말한다.
7월 8일(갑신/8월 23일)
흐리되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바람은 종일 세게 불었다. 몸이 고단하여 여러 장수들을 만나지 않았다. 각 관청과 포구에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오후에 충청 수사를 만나러 갔다.
저녁에 고성 사람으로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온 사람을 직접 문초했다. 광양 현감 송전(宋銓)이 그의 장수인 병마절도사의 편지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 낙안 군수와 충청 우후(虞候)가 온다고 했다.
주) 송전(宋銓)은 송두남(宋斗南)의 형이고 선거이(宣居怡, 1550~1598)의 손위 처남이다.
7월 9일(을유/8월 24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충청 우후 원유남(元裕男)이 교서에 숙배(肅拜, 삼가 공손히 절함)했다. 저녁나절에 순천, 낙안, 보성의 군관과 아전들이 격군에게 신중하지 못한 것과 기한을 어긴 죄를 문책했다.
가리포 첨사(僉使)와 임치(臨淄) 첨사(僉使), 소비포(所非浦) 첨사(僉使)와 마량 첨사(僉使), 고성 현령이 함께 왔다. 낙안(樂安)의 군량미 200섬을 받아서 나누었다.
7월 10일(병술/8월 25일)
맑다가 저녁에 비가 내렸다. 아침에 낙안(樂安)의 견본(見本)으로 가져온 벼를 깨끗이 찧은 것과 광양의 벼 100섬을 되질하여 세었다. 신홍헌(申弘憲)이 들어왔다. 저녁나절에 송전(宋銓)과 군관이 활 15 순을 쏘았다.
아들 면(葂, 3남)의 병세가 다시 심각해져 피를 토하는 증세까지 이르렀다니 심각하다. 그래서 아들 울(蔚, 차남), 심약(審藥) 신경황(申景潢), 정사립(鄭思立), 배응록(裵應祿)을 함께 보냈다.
7월 11일(정해/8월 26일)
종일 궂은 비가 내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울(蔚, 차남)이 떠나는 길에 힘들 듯하고, 면(葂, 3남)의 병세는 어떤지 걱정스럽다. 장계 초고를 직접 고쳐 주었다. ‘원 수사가 불평하는 말을 많이 했다’는 경상 순무사(巡撫使) 서성(徐渻)의 공문이 도착했다.
오후에 군관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봉학(奉鶴)도 함께 활을 쏘았다. 윤언침(尹彦枕)이 점검을 받으려 이곳으로 왔기에 점심을 먹여서 보냈다. 저물녘에 비바람이 크게 몰아쳐 밤새 계속되었다. 충청 수사가 와서 만났다.
7월 12일(무자/8월 27일)
아침에 소근포(所斤浦) 첨사(僉使) 박윤(朴潤)이 후시(帿矢, 화살) 54개를 만들어 왔다. 공문을 써서 나누어 주었다. 충청 수사와 순천 부사, 사도 만호, 발포 만호, 충청 우후(虞候)가 함께 와서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와서 어머니는 평안하시지만, 면(葂, 3남)의 병세가 위중(危重)하다고 하니 몹시 걱정스럽다.
재상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는 유 재상을 시기하는 무리가 그를 비방하기 위해 지어낸 말일 것이니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홀로 텅 빈 동헌(東軒)에 앉아 있느니 더욱 어지럽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 재상과 뜻이 맞지 않는다면 나랏일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주) 이때 유성룡은 심한 병을 앓고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났지만 실제로는 역병에 걸려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다. -126)-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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