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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25

서평

by 웅석봉1 2025. 4. 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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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류와 하지정맥류가 뭘까?

 

혈관(血管)이 혹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으로 혈관에 잘 생기는 병 중 하나가 동맥류(動脈瘤). 동맥벽에 강한 압력이 가해져 혹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疾患)이다. 대동맥에 생기는 대동맥류(大動脈瘤)와 거미막밑출혈, 또는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의 원인이 되는 뇌동맥류(腦動脈瘤)가 있다.

 

대부분 동맥류는 증상이 없는데, 혹이 커지면 등이나 가슴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 혹이 터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동맥류는 고혈압(高血壓)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과도한 염분 섭취와 비만, 스트레스에 주의하자. 동맥류는 터지는 장소에 따라 피가 섞인 대변, 즉 혈변(血便)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맥의 혹 중에는 다리 표면에 정맥(靜脈)이 부어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하지정맥류(下肢靜脈瘤)가 많다. 동맥류와 달리 터져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둔중한 통증(痛症), 피부가 검게 변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보다 여성(女性)에게 많은 편이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0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갑오년 7(15947)

 

71(정축/816)

 

맑다. 배응록(裵應祿)이 원수의 거처에서 돌아왔다. 원수가 잘못을 뉘우치는 말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날은 인종(仁宗)의 제삿날이라 종일 홀로 지냈다. 저녁에 충청 수사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갑오년 618일의 원수 권율이 광양 현감이 복병(?)을 정할 때 사사로운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하였다는 말을 원수의 서출 처남 조대항(曺大恒)의 말만 듣고 행했다고 한 말을 두고 뉘우친다고 했다고 추정된다.

 

72(무인/817)

 

맑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순천의 도청(都廳, 총무 관리직원)과 아전, 광양의 아전 등의 죄를 물었다. 전라좌도 수사들의 활쏘기를 시험하고, 적의 장물을 나누어주었다. 저녁나절에 순천 부사, 충청 수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첨지 배경남(裵慶南)이 휴가를 받아서 돌아갔다. 노윤발(盧潤發)을 흥양(興陽)의 군관(軍官) 이심(李深), 병선색(兵船色, 병선 담당 관리), 그리고 괄군색(括軍色, 모병 담당 관리) 등을 붙잡아 오는 일로 전령을 주어 내보냈다.

 

) 당시는 전쟁 중으로 순천의 아전, 광양의 아전, 흥양의 군관, 병선색, 괄군색 등의 잘못한 죄를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확실하게 물어 군기를 바로 세울 필요에서 취한 조치로 추정한다.

 

73(기묘/818)

 

맑다. 충청 수사와 순천 부사가 활을 쏘았다. 웅천 현감 이운룡(李雲龍)이 휴가임을 고하고 미조항으로 돌아갔다. 음란한 여인(女人)의 죄를 물었다. 여러 배에서 여러 번 양식을 훔친 사람들을 벌했다. 저녁에 새로 지은 누각(樓閣)을 점검차 나갔다.

 

74(경진/819)

 

맑다. 아침에 충청 수사가 와서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오후에 마량(馬梁) 첨사(僉使), 소비포 권관도 와서 같이 점심밥을 먹었다. 왜적 5명과 도망병 1명을 처형(處刑)하도록 명했다. 충청 수사와 활 10 순을 쏘았다. 옥과(玉果) 지역의 군비 지원 담당인 조응복(曺應福)에게 참봉(參奉) 임명장을 주었다.

 

75(신사/820)

 

맑다. 새벽에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했다. 감사할 일이다. 심약(審藥, 약재 감독, 申景漢)이 내려왔는데 매우 용렬하니 한심스럽다. 우수사와 충청 수가가 같이 왔다. 여도 만호가 술을 가지고 와서 같이 마시고, 10여 순을 쏘았다. 모두 취하여 수루에 올랐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76(임오/821)

 

종일 궂은 비가 내렸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최귀석(崔貴石)이 도둑 3명을 잡아 왔다. 박춘양(朴春陽) 등을 보내어 그 무리의 우두머리를 잡아 오도록 했다.

 

아침에 정원명(鄭元溟) 등을 격군을 정비하지 않을 일로 잡아 가두었다. 저녁에 보성 군수가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늦게 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빗줄기가 마치 삼대 같아서 비가 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있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민다. 이영남(李英男, ?~1598)이 왔다. 보성 군수가 돌아왔다. -12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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