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사 갑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뒷산을 기어올랐다.
산기슭 조그만 묘지 앞에 잔 올리는 후손 넷
*할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오늘 이사 갑니다.
동네 노인 두 분이 무딘 삽질을 시작한다.
보기보단 오래된 전문가들이다
노인의 머리가 봉분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바닥의 돌이 보일 때까지 파고 살폈다
없다. 뼈는커녕, 뼈의 흔적조차 없었다.
80년 된 할아버지 묘지를 이장(移葬)하라는
팻말이 붙은 지 1년이 넘었다
군청에서 골프장 지어 세수(稅收)를 늘려야 한다니
말은 맞는 말 같은데 세상이 거꾸로 달린다.
애초에 비석 하나 없었으니 이장할 무엇도 없다.
흙 한 줌 태워서 허공으로 올리니 흰 구름이 웃는다.
구름에 절하고 산을 기어서 내려왔다
영혼이 쉴 공간마저 파버린 후손은 어디서 효를 논하랴.
사람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흙이 아니라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되어 수증기가 되어 바람에......,
인생의 무소유를 확인한 후손은 낙엽만큼이나, 쓸쓸하였다
후기) 그날 밤 두 노인은 읍내에서 목욕하고 밥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거창 신문(愼門) 30세손으로 태어나시어, 가조면에서 아들만 둘을 두시고, 병을 얻어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자면 골골하시다가 돌아가셨다니 아마도 무슨 암이 아닌가 한다.
그 후 할아버지는 마을 뒷산에 모셔졌다. 그때가 대략 1930년대 초일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당연히 없다. 태어나기도 한참 이전이니.
홀몸이 되신 할머니는 거창을 떠나서 낯선 땅 산청으로 이주하셨다. 산청으로 이주하신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서 살아가기가 어려워 안 씨 집안으로 개가하셨고, 그 후에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두시었다.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분이 나의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의 장남이다. 지금(2022년 11월)은 큰아버지도 아버지도 큰어머니도, 할머니가 개가하신 집안의 두 딸과 삼촌도 세상을 하직한 지 오래고 어머님과 숙모님만 생존해계신다.
10여 년 전 추석을 한참 지난 후에 큰집 조카와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갔더니 묘지를 이전하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팻말의 주인공을 찾아 군청에 가니, 이곳에 친환경골프장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 개인이 불응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의 일꾼을 얻어서 묘지를 이장하려고 묘를 파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백골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흙 한 줌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내려오면서 글 한 줄 지었다. 시 같지도 않은 것이 바로 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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