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124

기행문

by 웅석봉1 2025. 1. 11. 11:56

본문

불면증이 뭘까?

 

불콰한 기억이 떠올라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며 권태감(倦怠感),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 머리가 무거운 증상, 현기증(眩氣症),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불면증(不眠症)’이라고 진단한다.

 

잠들 수 없는 원인으로는 스트레스와 신체 질환(疾患), 심리적 질병(疾病), 음식이나 음료 섭취 등을 들 수 있다. 또 밤을 새우는 등 불규칙한 생활과 근처 공사장(工事場)이나 자동차 소음 등도 영향을 준다.

 

걱정거리를 없애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규칙적인 생활로 몸과 마음의 리듬을 바로잡는다. 그런데도 개선되지 않으면 의사에게 처방받은 수면제(睡眠劑)를 복용한다. 그러나 수면제 남용(濫用)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따뜻한 욕조에 몸 담그기, 음악 듣기 등 잠자리에 들기 전 몸과 마음을 이완(弛緩)하면 도움이 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37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오름을 내려서니 넓은 녹차밭이 놓여있다. 차밭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정신없이 돌고 도는데,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리본이 안 보이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라는 올레 교훈(敎訓)을 아무리 반복해도 리본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삼거리에서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마침 봉고차가 한 대 지나가기에, 기사(技士)한테 길을 묻고 겨우 올레길을 찾을 수 있었다. 올레길은 삼거리에서 우측이었다. 길을 찾고 들길을 한참 걸으니, 주택이 듬성듬성 마주 보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 어귀에 메뉴판이 적힌 쉼터가 있어 목이라도 축이려고 들어서려는데 정주석(旌柱石)에 정낭 세 개가 가로 걸려 있었다.

 

막대가 세 개이니 주인장이 멀리 출타 중이라는 표시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그 쉼터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들어가지 못했다. 주인 없는 쉼터를 지나 차도를 조금 걸으니 오렌지색 간판(看板) 하나가 길 위에서 빛난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가슴이 뭉클하다. 말로만 듣든 그 사람을 오늘에야 만나는구나, 김영갑(金永甲, 1957~2005)이란 사나이의 얼굴이 궁금하고 그가 평생을 집착해서 찍은 사진과 그가 목숨 걸고 만든 <두모악>의 풍경이 보고 싶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두모악>의 정문 앞에 서서 안내 간판을 읽었다. 안내문의 마지막 문구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평생 사진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아간 한 예술가의 숭고한 예술혼(藝術魂)과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제주의 비경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잘 가꾼 잔디밭에 그의 큼직한 대표작 몇 점과 멋진 동상(銅像) 하나쯤은 있겠거니 했었는데 아니었다. 없었다. 잘 가꾼 잔디도 큼직한 대표작도 동상도 없었다. 대신 정원 초입에는 긴 창의 모자를 쓴 유럽풍의 초라한 소녀상(少女像)이 나그네를 반긴다.

 

단발머리 소녀의 오렌지색 치마에 적힌 글, -외진 곳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人事)가 또 가슴 뭉클하게 한다. 빈말이 아닐 것이다.

 

정원 속에는 허리쯤 오는 돌담을 중간중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 자연을 더 높게 배치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는 사람보다는 제주의 자연을 더 사랑해 보였으리라, 하지만, 그의 진심은 자연의 표면이 아니라 자연의 이면(裏面)에 있는 사람을 보라는 것이리라.

 

몸의 근육(筋肉)이 굳어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 그는 이 정원을 만들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정원이 더 궁금했다. 초등학교(初等學校)를 개조하여 만들었으니, 운동장이 모두 정원이 아닐까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원은 삼달 초등학교 운동장의 일부분이고 많은 공간(空間)이 비어있었다. 비어있는 공간은 통로도 되고 주차장도 되고 공연장도 될 것이다. 그의 안목이 옳았다. 그래서 정원(庭園)은 더욱 소박하고 포근하다.

 

정원을 걷는데 한쪽 모서리 팽나무 아래, 바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서 웃고 있는 돌하르방, 그의 목에는 고장(故障) 난 카메라 한 대가 걸려 있다. 참으로 소박하고 여리다. 그뿐 아니다.

 

돌담 화단의 군데군데 작은 망부석과 손바닥만 한 토인(土人)들이 앉아 있다. 모두가 찌그러지고 문드러진 형상(形像)이다. 그 형상들이 모두 김영갑으로 다가왔다.-124)-계속-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