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은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전문
*황지우(黃芝雨), 시집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 지성사, 1991)에 수록됨.
<어설픈 해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나는 미리 가서 너를 기다린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또한 그 희망이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살아 가면서 누군들 기다림이 없을까만은 그 기다림도 급수가 있다. 순간의 기다림과 짧은 기다림, 그리고 긴 기다림이 있다.
순간의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끝나지만, 짧은 기다림은 여운을 남기고, 긴 기다림은 생을 바꾼다. 여운(餘韻)과 생(生)은 다르면서 같은 것이리라.
지금(2025년 1월 7일, 오후 3시경)처럼 눈 내리는 오후면 더욱 내 가슴을 쿵쿵거린다. 보수를 기다리고 진보를 기다리고 자유 민주주의 기다린다.
<작가 소개>
황지우(본명, 황재우, 1952~ )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함.
1994년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역임하고 2018년에 정년 퇴임하였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시 <연혁(沿革)>이 입선되었고, 1980년 《문학과 지성사》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고 등단하였다.
같은 해 5.18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구속, 대학원에서 제적당하고 경찰에 체포, 고문을 당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저항시를 통해 젊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이 죽은 후 그를 추모하는 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를 《경향신문》에 발표하였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 지성사, 1983), 《겨울- 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나는 너다》 (풀빛, 1987),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 지성사, 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조각 시집, 학고재 1995),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 지성사, 1998), 《나는 너다, 개정판》 (문학과 지성사, 2015) 등이 있으며
희곡집으로 《오월의 신부》 (문학과 지성사, 2000), 시론 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한마당, 1993)이 있다.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을 참고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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