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 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니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 지성사, 1981) 중에서
<어설픈 해설>
아~ 가을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었는가.
모든 길이 경계선을 무너뜨렸는가?. 여보세요, 죽선이, 죽선이는 어디로 갔는가? 그래서 전화선은 주인을 잃었는가? 그래서 한 번 떠난 애인은 꿈에라도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개 같이 쳐들어오는가? 그래서 매독같이 밀려오는가? 그래서 쓸쓸함을 체득하는가? 그래서 고독한가? 그래서 허무한가? 그래서 한없이 말 오줌 냄새가 풍기는 봉놋방에서 묻는가? 그래서 <블랙리스트> 그 시절이 그리운가? 미운가?
시인은 부스스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느냐,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느냐고.
병이다. 병이 아니고서는 이리도 아플 리가 없다.
<시인 소개>
시인은 1952년 충남 연기군에서 출생하여 수도여고를 졸업하고, 1971년 고려대학교 독문과에 입학한다.
《고대문화》 편집장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중에 이유 없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졸업도 못한 채 쫓겨난다. 다행히 학교 선배인 정병규 편집장의 도움으로 《홍성사》 편집부에 입사 한다.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사》에 〈우리 시대의 사랑〉 등 몇 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얼마 있다가 《홍성사》를 그만둔 그녀는 이후 번역 문학가로 활동하며 시 쓰기에 전념한다. 1993년에는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창작 프로그램에 다녀오기도 한다.
저서로는 『이 시대의 사랑』(1981), 『즐거운 일기』(1984년), 『기억의 집』(1989), 『내 무덤, 푸르고』(1993), 『연인들』(1998) 등.
제5회 지리산 문학상. 제18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제27회 편운문학상 시 부분을 수상함.
《다음 백과사전》 등 참조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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