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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의 <꽃자리>

시평

by 웅석봉1 2025. 1. 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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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않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들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 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의 <꽃자리> 전문.

 

(시인 소개)

 

구상 시인(본명, 구상준, 1919~2004)은 본적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9번지,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나, 1923년대 아버지의 교육사업을 위하여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리 (원산 근교)로 이주하였다.

 

1938년 천주교 집안의 영향으로 원산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 과를 수료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도쿄의 니혼대학 전문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1942년 귀국해서 원산의 북선 매일신문기자로 활동했다. 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이 펴낸 해방기념 시집 응향(凝香)에 실은 , 여명도(黎明圖), 로 등단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예술지상주의, 퇴폐주의적, 악마주의적, 부르주아적, 반인민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부터 반사회적인 반동 작가라는 비판을 받자 19472월 원산을 탈출 월남하였다.

 

1949년 육군 정보국 북한 특보편집 책임을 맡아, 봉화라는 잡지를 제작하여 북한으로 비밀리에 보내고,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정훈국으로 옮겨 국방부 기관지 승리 일보을 제작하였다.

 

1952승리 일보가 폐간되면서 영남일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이 되어 반공 전쟁을 옹호하고 독재를 반대하는 논설을 펴 부산에서 압수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사회평론집 민주 고발이 판매금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반공법 위반으로 15년 구형을 받아 구속되어 6개월간의 감옥생활을 하였지만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이후 그는 정치참여를 거부하고 작품활동과 교수로 평생을 지냈다.

 

1976년 중앙대학교에서 시론을 강의, 1979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6년부터 중앙대학교 대학원 객원교수, 1998년부터 흥사단 명예 단우(團友) 등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비롯한 희곡과 시나리오, 수필 등의 작품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결국 구상 시인은 북으로부터는 반동 작가로, 남으로부터는 독재정권의 반대자로 몰려 곤욕을 당한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시집으로 구상 시집(1951), 초토(焦土)의 시(1956), 까마귀(1981), 구상 연작 시집(1985), 유치찬란(1989) 등과 자전 시집모와 옹두리에도 사연이(1984)를 펴냈으며 구상 시 전집(1986)을 간행했다.

 

2004년 금관문화훈장, 1993년 제38회 대한민국예술원 상 문학 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5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55년 금성 화랑무공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4511, 향년 85세에 폐질환으로 별세하였다. 장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성 베네딕토 회 <왜관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다. 구상 문학관도 왜관읍에 있다.

 

*해설을 붙여보면, <꽃자리>란 어떤 자리일까?

 

꽃자리는 편한 자리이고, 즐거운 자리이며, 행복한 자리요, 소중한 자리일 것이다. 우리네 인생, 각자 처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이리라. 그게 꽃자리이리라. 시인도 꽃자리에 영면하고 있으리라. 시인이시여! 영원한 자유인이여! 편히 잠드소서!

 

나무위키》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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