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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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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2. 2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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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이 뭘까?

 

뇌종양은 머리뼈 내부의 다양한 부위에 생기는 이상 세포 덩어리(종양)를 일컫는다. 뇌세포와 뇌척수막, 뇌신경에서 발생한 종양을 원발성(1차 성)’ 뇌종양이라 하며 생기는 장소와 종류에 따라 150여 가지가 넘는다.

 

뇌종양이 커지거나 주변에 물이 차면 머리뼈 내부를 압박해 심한 두통과 구역질에 시달린다. 또 뇌종양이 생기면 운동에 지장을 주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수도 있다.

 

수막 등 뇌 외부에 생기는 종양은 천천히 커지는 양성이 많고 치료하면, 거의 사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교종 등 뇌 내부에 생기는 종양은 세포가 증식하는 속도가 빨라 악성 종양이 많다. 악성 종양이라도 뇌 기능을 유지하며 연명할 수 있는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33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이곳 무릉 2리도 낯익은 곳이다. 11코스와 14~1코스의 종점이자 12코스의 시작점이니 이번이 세 번째 만나는 마을이다. 아직은 해가 중천에 있는 오후의 중간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중산간 도로를 따라 신평리 맛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난번 11코스를 걸으면서 우리 부부가 점심을 먹은 곳이다. 하도 맛이 유별나서 다시 찾았다. 식당은 이번에도 우리를 만족시켰다. 상호가 <신평올레>인 그곳은 고기국수와 순대국밥 전문점이었다. 오늘도 우리의 메뉴는 고기국수다. 맛이 기대 이상이다. 딸내미도 너무 좋아했다.

 

부른 배를 안고 오는 버스에 올라서 서귀포 가는 길목인 안성리의 <추사 김정희 유배지(流配址)에서 내렸다.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잠시 유배지를 일람하기 위해서였다. 유배지에는 그가 유배 생활을 했던 초가와 기념관 그리고 대정읍 성()이 있는 곳이다.

 

서귀포시에서 만든 <김정희 유배지> 안내 전단을 들고 감자같이 생긴 기념관 속으로 몸을 넣었다. 몸을 넣으니 참 편안하다.

 

기념관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 역사(曆史)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이었다. 세월이 흐르니 전시관이 낡은 데다 200710<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20105, 현재의 건물로 재건립되었다. 지하 2층 지상 1, 연 면적 1,192제곱미터의 규모다.

 

추사관에는 기념 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한 <예산 김정희종가유물 일괄>, 추사 현판 글씨, 추사 편지 글씨, 추사 지인의 편지 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추사관 1층에는 추사의 흉상(胸像) 하나가 헹하니 있는데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흉상은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이고 그 아래 좌대가 흉상의 배는 됨직하다. 사람의 어깨까지 올라오는 높이다. 그 앞에 누가 언제 두었는지 모르나 예쁜 생화 한 다발을 큰 병에 담아 유배객을 위로하고 있다.

 

그다음 전시물 중에서 <예산김정희종가유물 일괄>에 대해서만 소개하면, 추사 김정희 고택의 전래유물로 추정되는 월성위(月城慰 1720~1758) 김한신(추사의 증조부) 관련 유물 10점과

 

<신해년 책력(辛亥年 冊曆)>, (표제 1, 유묵 15)은 김정희가 사용했던 것으로 앞표지에는 <신해칠정(辛亥漆井)>이란 제목과 <길상여의관(吉相如意館)>이란 소장처가 예서(隷書)로 쓰여 있었다. 우리는 관람 시간(09~18)이 끝나,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추사기념관은 백미는 흉상인데, 이는 설치 미술가 임옥상(1950~ )이 무쇠를 소재로 제작한 작품이고, 전체 건물은 건축가 승효상(1952~ )의 작품이다. 유홍준(1949~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창비) 376~378쪽 참조.

 

김정희(1786~1856), 호는 추사, 완당, 예당, 시암, 노과, 농장인, 천축고선생, 보담재 등 수없이 많아 <백호당>이란 호를 더한 그는, ()만큼이나 한 많은 세상을 살다 간 조선 후기 실학자다. 그의 고향 충남 예산에는 기념관과 생가, 묘소 등이 있다. 우리는 그를 기리며 그가 9년간 귀양 생활한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를 벗어났다.

 

다음 날 아침 어부인과 나는 사랑하는 딸내미를 남겨두고 제주를 떠나왔다. 또 다음 여행을 상상하면서 다섯 번째 여행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11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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