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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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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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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은 2세기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지었다. 아테네 제우스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사이에 커다란 아치형 문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그전에도 판테온이 있었지만, 티투스 황제 때 불에 타버렸다.

 

로마 판테온은 후대 황제들이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했고 7세기부터는 교회로 사용했기 때문에 외부 대리석 조각과 청동 타일이 뜯겨나가고 내부 벽의 그림과 조각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집 자체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용도는 계속 바뀌었다. 다신교 시대에는 만신전(萬神殿)이었고, 기독교 국교화 이후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 교황청의 권력이 약해지자, 국립묘지 역할이 덧붙여져 화가 라파엘로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에마누엘 2세 등 권력자들의 관이 그곳에 안치되었다.

 

사람들이 판테온에 오는 것은 그 미학적 특징과 건축 기술에 관심이 있어서다. 판테온은 밖에서는 원통 모양 외벽에 반원형 지붕을 얹은 집으로 보였고, 코린트식 돌기둥과 현관 지붕은 그리스 신전의 전면과 비슷했다.

 

하지만 안에서 받은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판테온의 원형 홀에서자 시선이 저절로 콘크리트 돔 천장 가운데 빛이 들어오는 큰 구멍으로 갔다. 빛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데워진 공기가 나가고 비와 눈도 떨어진다는 구멍이었다.

 

조각상과 그림이 있는 벽 쪽은 어두워서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미리 찾아본 정보들이 맞는지 가늠해 보았다. 천장 돔의 두께가 위로 갈수록 얇아진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홀의 지름과 바닥에서 돔 중심까지의 높이는 비슷해 보였다. 그 둘이 같다면 천장 돔의 테두리를 따라 그린 가상의 원이 홀 바닥 중앙에 닿을 수밖에 없다.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면 판테온은 지름이 약 43미터인 공의 아래 절반을 지름이 같은 원통에 담은 형상이다.

 

4500톤이 넘는 돔의 압력이 한가운데 구멍의 테두리 돌에서 맞물려 균형을 이루고, 전체의 하중은 원통형 벽을 따라 세운 기둥들이 지탱한다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는 석회 반죽에 가벼운 화산암을 섞어 만들었는데, 겉보기로는 오늘날의 콘크리트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24~125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10코스(화순~모슬포 올레)

 

오늘도 어제처럼 혼자 걷는다. 어부인은 어제 일(딸아이 아파트 정리 등)이 마무리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든든히 챙기고 집을 나섰다. 10코스는 자연이 훼손되어서 코스를 폐쇄한다는 뉴스를 접하기는 했지만 올레 완주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라 무시하고 걷기에 나섰다.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702번 제주서(西) 일주로 버스를 타고 안덕농협 정류장에 내려 화순 해변 쪽으로 걸었다. 10분쯤 걸으니 시발점인 금모래 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에서 고개를 드니 해발 395m의 종처럼 신비스러운 산이 시야를 가린다. 전설에 의하면 사냥꾼의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신 옥황상제께서 한라산 꼭대기를 집어 던진 것이 여기까지 날아와 산방산이 되었고, 그 패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고 전한다.

 

백록담의 둘레가 산방산의 아래 둘레와 비슷하다고 하니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도 머리가 끄떡여진다. 오늘 하루 종일 저 신묘한 산을 보면서 걸을 것으로 생각하니 정신까지 몽롱하다.

 

출발지인 화순 금모래 해변은 적막하다. 철이 지난 해수욕장이라 그렇고, 올레 표시가 사라져서 더욱 그렇다. 해변을 걸어 그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타고 조그만 언덕 위로 기어올랐다.

 

여기가 <썩은 다리>라는 탐방로다. 탐방로는 모래사장 위에 있는 퇴적암이 오랜 세월 풍화되어 노란색으로 변한 것이 마치 바위가 썩은 것처럼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조그만 오름을 내려서니 공사 펜스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안은 물막이공사가 한창이었다. 화순항 2단계 개발 공사(공사 기간 20131016~20171015)가 한창 진행 중이다. 4년이나 되는 긴 공사다. 공사가 잘 진행되어 해변의 원형을 찾았으면 좋겠다.

 

공사 현장을 뒤로하고 산길을 걸어 나가니 차도와 접한 삼거리에 흰 위령탑이 신묘한 산방산 그늘에서 길을 지키고 있다. <제주 4.3 안덕면 희생자 위령탑>이다. 높고 흰 위령탑 아래 검고 작은 추모 시비가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있다.

 

추모의 글 일부를 보면, <바람 속에서 4.3을 떠올리며>라는 제하의 강방영이 쓴 글이다.

 

아부지! 삼촌! ! 아시! 가슴으로 날아든 총알, 흙으로 스며든 피,/ 밤중에 붉게 타던 하늘, 재로 사라진 마을, 엇갈린 바람들이 피를 불렀던 시절/ 아이들 이끌고 동굴로 숨었다가 캄캄한 어둠이 된 동네 사람들, () 저 들에 노래하는 새, 익어가는 열매, 뜨겁게 가슴속 불길로 환한 빛으로 비추도록/ 한숨 쉬는 섬은 그리움의 파도 속에 당신들을 보내드립니다. 아부지! 삼촌! ! 아시!/ 그 가슴속 소망 새로운 날개를 달고, 드넓은 생명의 하늘로 올라 자유롭게 노래하시기를, 2009년 가을.

 

여행에서 돌아와 알아보니 강방영(1956~ ) 시인은 1982<시문학>으로 등단하여 그동안 시집 6권을 낸 안덕면 출신 시인이자 현직 대학교수다. 덧붙이자면 시인의 이름만 보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는 <()가 아니라 그녀()>. 그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고 살면서 제주의 자연을 노래한 토박이 제주인이다. -8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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