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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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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1. 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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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이 유명한 질문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오래 사귀지도 않았고, 그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정치 행위를 한 적도 없다.

 

안토니우스가 아내 옥타비아를 버리고 클레오파트라와 혼인한 것이 옥타비아누스와의 동맹이 깨지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아니었더라도 로마가 공화정을 유지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공화정이 폐지되었을 때 포로로마노의 정치적 기능도 함께 끝났다. 공화정의 집정관이나 호민관과 달리 황제는 공론장을 원하지 않았다. 황제들은 저마다 다른 장소에 자기의 이름을 붙인 포로를 만들었고, 포로로마노는 권력자의 기념사업이나 시민들의 개인적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포로로마노가 건물로 가득 차게 되자 황제들은 변두리와 자투리땅에 개선문과 신전을 세웠다. 기독교 국교화 이후에는 고대의 온갖 잡신들과 신격화한 황제에게 봉헌한 신전을 관리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포로로마노는 점차 부서진 건축물의 잔해가 뒹구는 고대문명의 폐허로 변해갔다. 포로로마노의 폐허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그렇다. 종교도, 예술도 제국과 황제의 권력도 다 무상한 것이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 도서 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123~124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오늘도 올레길을 걸어보자

 

논짓물을 뒤로하고 해변을 걸으니 예쁜 포구 하나가 작은 고깃배 서너 척을 품고 꿈꾸는 듯 졸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에 불현듯 고향 생각이 난다. 포근하고 정다운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면 왜 고향이 생각날까?……허허,

 

포구는 그 이름도 예쁜 <하예포구>, 포구를 나선 길은 바다를 끼고 들을 가로질러 길게 이어진다. 바다는 망망하고 들은 넓다. 들은 저 멀리 <군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산줄기 땅이다.

 

밭에는 한창 마늘이 촉을 뻗치고 자라고 있는데 이곳 넓은 들을 사람들은 <난드르(넓은 들)>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대평(大坪)리다. 마을은 경관이 수려하고 인심이 좋아 외지인들이 많이 산다. 그래서인지 길섶에 카페들이 많다.

 

대평리 넓은 들 가장자리에 대평포구가 있고, 포구 서쪽은 <월라봉><박수기정>이 바람을 막아주어 포근하고, 포근한 포구는 8코스 종점이다.

 

언젠가 올레길을 처음 걸을 때(9코스 걷기) 이곳에서 아주 맛있게 점심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포구 입구에는 이슬람 사원 같은 건물의 피자점이 이색적이다. 이 외진 곳에서 피자 장사가 잘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코스 종점에 다다르니 초가을 붉은 해가 나처럼 지친 듯 서산 위에 걸려있다. 지친 절경이다. 반쯤 남은 불빛은 수줍은 듯 마주보기를 거부한 채 꼴깍거리다가 이내 사라진 것 같다. 지쳐서 못 본 내 잘못이 크다.

 

어제 한라산 야간 등반을 탓하고 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끝까지 동행한 중년의 여인도 올레 간세를 만진다. 늦는 출발 때문에 속력을 내었는데, 그녀도 어지간히 빨리 걸은 모양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려면 또 한참을 걸어서 나가야 한다.

 

동행인은 피곤하기도 하고 시간도 없다면서 택시를 콜한다. 콜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올레 간세 옆 식당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서 그녀와 나누어 마셨다.

 

그이도 나만큼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이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실례라서 묻지 않았다. 다만 숙소가 모슬포 쪽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동승(同乘)했는데, 나는 서귀포 쪽이니 방향이 맞지 않아서, 일주 버스가 다니는 길목에서 내렸다.

 

올레를 걷다 보면 혼자 걷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오늘의 동행인도 어제까지는 친구들과 함께 걸었지만, 가끔은 오늘처럼 혼자서 걷는다고 한다. 혼자 걸으면 친구들과 같이 걸을 때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고백하였다. 그런 그녀가 진정한 자유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선 듯 동의하기 어렵다. 인생에도 동행이 필요하듯이 여행에도 동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서로 보완적인 동행은 행복을 더한다고 본다. 특히 초행길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아직 자유를 온전히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다섯 번째 첫날, 몸은 피곤했지만, 눈은 황홀할 정도로 행복한 하루였다.-88)-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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