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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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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10. 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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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2011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공지영 작가의 작품, 맨발로 글목을 돌다도입부를 읽어보자.

 

*나는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종일 종달새처럼 지저귀던 아이를 재우고, 챙겨둔 트렁크를 점검했다. 비행기표와 여권 그리고 봉투에 든 엔화. 나는 H를 취재하러 가야 했다. 오래전부터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신 기자가 내게 새로 펴내는 H의 책과 근황의 취재를 부탁했다.

 

신 기자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그의 책이 나오면 한국에서 어떤 형식이든 H가 낸 책의 홍보를 도와주어야 할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흔쾌히 그러마 했던 터였다. H는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는 정말 몇 안 되는 번역자였고 내 책 두 권을 이미 일본에 번역해서 소개한 바 있었다.

 

공항에 나가려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소주를 한 병 집어 왔다. 창작으로 인해 온 신경이 고슴도치처럼 일어서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덮쳐올 때 과거의 아픔이 새삼 시큰거리며 몰려올 때 나는 언제나 투명하고 다정한 그 액체의 따뜻함을 빌려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고 잠을 이루곤 했었다.

 

그런데 탁자 앞에 따라놓은 그 소주를 한 잔 마셔버리기도 전에, 내 가슴으로 이상한 통증이 지나갔다. 무언가가 나를 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더듬거리며 만져보니 완강한 갈비뼈의 감촉이 여전했는데 무언가 내 속에서 왈칵 빠져나갔고 그리하여 그 갈비뼈의 안쪽 공간이 뻥 뚫린 듯 허전했다.

 

배구공만 한 크기의 검고 서늘한 그 공간 속으로 내 삶이, 대부분은 고통이라고 기억되고, 그리하여 살기 위해 고통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머리를 부볐던 시간들이 찬바람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집 안은 따스했지만, 등줄기가 섬뜩해져서 누군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했는데, 밤은 이미 깊어 전화를 걸 대상조차 없었다. 다행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는 것이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가슴을 좀 웅크리고 편한 자세를 취해보았는데, 그때 문장들이 장대비처럼 내게 내렸다.*

 

 

**이하 생략하고, 주인공 격인 나는 문장들이 장대비처럼 내게 내린전업 작가고, H는 번역자 겸 작가고, 신 기자는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올레꾼들은 잘 알겠지만, 제주 올레는 총 26개 코스가 일시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20079, 1코스가 처음으로 오픈된 이후 201211월에 21코스가 마지막으로 개장됨으로써 5년여 기간 동안 26개 코스에 총길이 425km의 올레길이 완성되었다. 26개월 만에 완성한 428km의 경부고속도로에 비유되는 대장정이었다.

 

사단법인 제주 올레에서는 최근 올레 전 코스를 완주한 올레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1월까지 총 670명이 완주하였고, 이를 성별로 보면 남자가 68%, 여자가 32%이고, 거주지별로 보면 수도권이 50.8%, 경상도권이 16.1%, 제주도가 13.5%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이 올레를 걸은 이유로는 마음의 휴식, 건강, 제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는 순이었으며, 걸은 후 좋았던 점에 대해서는 제주를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점과 제주의 자연에 감동한 점 그리고 제주 지역민들과의 만남에서 행복을 느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완주자들이 추천하고 싶은 코스로는 쇠소깍에서 외돌개로 이어지는 서귀포 해변의 6코스, 산방산과 송악산을 아우르는 10코스, 그리고 저지와 무릉 곶자왈로 이어지는 14~1코스를 들었다.

 

올레길 26개 코스 어디 한 코스라도 감동 없는 길이 있을까만은, 완주자들이 추천한 코스가 더욱 기대되고 가슴 설렌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 이 세 코스를 모두 남겨 두었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비행기 결항으로 이틀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레길 위의 숙소를 이용해 보았는데, 예상 밖의 소득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으니, 시간도 절약되고 길 위의 야경도 곁들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았다.

 

그 즐거움은 배낭을 지고 다니는 수고로움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험으로 알아가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소중함이리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때로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첫 여행에서 세 개 코스, 두 번째 여행에서 네 개 코스, 이번 여행에서는 7~1코스, 13코스, 15코스, 16코스 등 네 개 코스를 택했다. 이로써 제주 올레 스물여섯 코스 중에, 열한 개 코스를 걸었다. 앞으로 네댓 차례 더 제주를 찾아서 더 걸어야 올레를 완주하게 될 것이고, 이 여행기도 마무리될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여행 당시를 기억하고 회상해 보는 시간은 여행의 감동이 몸으로 스며드는 황홀한 순간이면서 여행이 주는 미덕이다. 특히 온몸으로 걸은 여행길의 숨결을 온몸이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여행기를 쓰는 축복일 것이다. -4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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