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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향기를 찾아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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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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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창의 경제적 부()는 이후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창을 거쳐 부안면 소재지를 지나서, 인촌(仁村) 마을에는 호남의 거부 중 거부인 울산 김씨 집이 있는데 오늘날에는 김성수 생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김 부잣집은 1880년에 지어진 것으로 호남 토호(土豪)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1311쪽을 참고하였음.

 

인촌 마을도 건성으로 지나서 해가 서산으로 기울 즈음에 변산으로 올라와서 예약한 콘도(, SONO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지어 먹었다. 콘도는 조리대가 있어 음식을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빨래도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일반 호텔보다는 콘도가 좋다.

 

밤엔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피곤한 몸은 밤 10시도 되기 전에 골아서 떨어졌다. 어부인이 골아서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만, 나는 차만 타고 호강만 했는데 어찌하여 나까지 골아서 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허허허.

 

다음날 아침밥은 가져간 미역무침과 멸치볶음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부여로 달리니 오든 비가 간간이 멈춘다.

 

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인기 만점이었던 파크골프가 부여에서도 요즘 인기라는데 마침 금강 천변에 있는 파크골프장 하나를 둘러보았다. 54홀짜리로 며칠 전에 전국 대회가 있었던 모양인데 거기다가 54홀을 추가로 건립한다니 파크골프 애호가인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그런 파크골프장을 둘러보고, 어탕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백제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 백마강 변 나성(羅城) 한쪽에 조촐한 모습으로 세워진 신동엽(申東曄) 시비와 <불교전래사은비(佛敎傳來謝恩碑)>에 들렸다.

 

시비에는 그가 남긴 그리움을 노래한 산에 언덕에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 소개한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1930~1969) 시인은 부여가 낳은 최고의 시인이자 현대 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의 거목임을 누가 부정하리.

 

<불교전래사은비(佛敎傳來謝恩碑)>1972510일 일본의 민간 단체인 <불교전래사은 사업회(佛敎傳來謝恩事業會)>가 세운 비석이다.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수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데, 그 고마운 마음을 표한 일본 지식인의 순수함을 느껴지기도 하였다.

 

한편 부여읍 내에는 신동엽 생가와 그의 문학관이 있다기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바로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나도 신동엽 시인처럼 4. 19혁명으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인접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정림사지(定林寺址)를 찾았다. 정림사지는 백제 사비(泗沘,扶餘) 도읍기(538~660)에 건립된 사찰로서 나성(羅星)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림사지 중에서도 특히 <오층석탑>에 대한 평가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 잘 표현되어 있어 그 이상으로 내가 표현할 길이 없어 여기 유홍준 교수의 글로 대신한다.

 

*부여 답사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정림사터 <오층석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림사 탑은 멀리서 보면 아주 왜소해 보이지만 앞으로 다가갈수록 자못 웅장한 스케일도 느껴지고 저절로 멋지다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본래 회랑 안에 세워진 것이니 우리는 중문(中門)을 열고 들어온 위치에서 이 탑을 논해야 한다. 이 탑의 설계자가 요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볼 때 정림사 탑은 우아한 아름다움의 한 표본이 되는 것이다.

 

완만한 체감률과 높직한 1층 탑신부는 우리에게 준수한 자태를 탐미케 하며 부드러운 마감재는 그 고운 인상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헌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러나 단정한 몸가짐에 어딘지 지적인 분위기, 절대로 완력이나 난폭한 언행을 할 리 없는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용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

 

특히 아침 안개 속의 정림사 탑은 엘리건트(elegant)하고, 노블(noble)하며, 그레이스(grace)한 우아미의 화신이다.

 

만약 안목 있는 미술사가에게 가장 백제적인 유물을 꼽으라고 주문한다면 서산 마애불,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산수문전(山水紋塼) 등과 함께 이 정림사 <오층석탑>이 반드시 꼽힐 것이며,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정림사 <오층석탑>이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적 유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100개의 유물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명작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 세속에서는 백고가 불여(不如) 일부라고 했다. 풀이하여 고고춤 백번보다 부루스(블루스) 한번이 더 낫다고 했듯이, 정림사 탑은 폐허 왕도 부여의 부루스이다.* -341~342쪽에서 인용함.

 

이어서 우리는 20157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넓은 정림사지를 일별(一瞥)하고 정림사지 박물관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둘러보고 인접한 부여 왕릉원과 산수문전(山水紋塼)이 엄중히 보관되어 있다는 국립부여 박물관은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고 세종으로 돌아왔다.

 

언제 기회를 잡아 서울의 위례성과 국립부여 박물관과 공주(公州, 雄津)의 공산성을 살펴보면서 백제의 향가를 음미(吟味)하고 싶다. 이번 여행도 어부인의 수고로 행복한 여정(旅程)이었다.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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