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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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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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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정리할 것인가? 정리하면서 살 것인가? 나이가 드니 온갖 생각이 다 난다. 결국 정리하면서 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꽂힌다. 무엇부터 정리할까? 시집, 수필집, 소설집, 잡문집, 월간지 등등 생각하다가 월간 잡지부터 정리하자, 결론이 난다.

 

그래서 집어 든 책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그런데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 그래서 주요 부분을 필사하면서 버리자, 결론지었다. 2017년 제41이상문학상 작품집128쪽을 인용한다. 구효서 작가의 말이다.

 

*오전 아홉 시에 출근한다.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한다. 내 집은 노원구 중계동이고 작업실은 공룡동이다. 삼천리 호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왕복 50분 거리다. 자전거 타는 이유는 다리의 근력을 키워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일부러 언덕이 있는 길을 택한다. 오른쪽 왼쪽 모두 무릎 수술을 했다.

 

한 번은 작업실 바닥에 걸레질하고 일어서다가 다쳤고, 또 한번은 버스에서 내리다가 다쳤다. 지극히 일상적인 몸놀림이었지만 어느 순간 무릎에서 딱 소리가 났고 주저앉았다. <운동 부족이죠,> 수술 전후로 의사가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의사는 기분이 나쁜 듯했다.

 

문제의 원인은 명백한데 뭐 더 붙일 게 있겠는가 싶었겠지,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도무지 그 모양이었겠느냐는 거였겠지, 그래도 그렇지, 의사라는 사람이 뚱하기는, 나는 속으로 부아가 났다. 환자한테 막 오버해도 되는 건가, 환자 없이 의사 있냐?

 

근데 말을 못했다. 아이쿠, 의사 생각해서 다치셨어잉? 의사가 그럴 것 같았다. 정형외과 의사한테 그런 말을 듣기 전에 나는 이미 오래전에 신경외과 의사한테 똑같은 말을 들었다. <운동 부족이죠,> 어쩔 수 없이 디스크 수술을 했다.

 

내 건강을 염려했던 윤성근 시인의 따뜻한 독촉과 채근 덕이었다. 문학사상직장 동료였던 그는 척추 전문 병원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런데 시인은 정작 자신의 건강은 못 챙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구효서(1957~현재) 작가는 인천 강화 출신 전업 작가다. 그는 풍경소리라는 중편 소설로 2017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사상편집자로 일했다.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마침 부부가 밭에서 무언가 상자에 담고 있다. 감자다. , 노지감자를 이 한겨울인 지금 캐는가! 지금 캐고 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신기하기도 해서 말을 걸었다.

 

-감자 시세 좋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저 그래요, 되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하다. 그래도 수고하세요! 행복하세요! 내가 말하니 감사합니다, 가 되돌아온다.

 

들판 길이 끝나고 마을 길을 잠깐 걸으니, 세화포구다. <해경 세화출장소>100m 거리에 있고, 이어서 <세화오일장터>가 쓸쓸하게 다가온다. 장날은 5, 10일이라 하니 어찌 허전하지 않겠는가. 오늘이 그날이 아니니 날짜를 잘못 잡은 건 나그네의 책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 되어야 나그네가 배가 부를 터인데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걷는다.

 

길은 해변으로 이어지는데, 잔잔한 해변엔 지금 삼중주가 펼쳐지고 있다. 가까이에는 고사리손을 호호 불며 모래를 집어 올리는 가족들이 일중주고, 그 사이로 아장아장 걸으며 모래 위에 검은 그림을 그리는 물새들이 이중주고, 그 옆에 흰 이불을 달싹달싹 덮으며 길게 늘어져 낮잠 자는 검은 바위들이 삼중주다.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환상의 풍경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나그네의 눈시울이 적셔진다. 눈물은 슬플 때만 나는 것이 아니더라, 아주 기쁠 때나 아주 즐거울 때나 아주 평화로울 때도 눈물이 나더라,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올레가 아니면 어디서 다시 보리!

 

평화로운 풍경을 참 한가하게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니 해변의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 교통 안내판에는 해녀박물관이 여기서 100m, 그 길을 걸어서 해녀박물관 마당에 들어서니, 안타깝게도 박물관은 내부공사로 장기간 휴관 중이다. 아쉽지만 어이하리.

 

박물관 넓은 뜰 앞에 종착지 간세가, 지는 햇빛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지는 해는 아직 붉지는 않았다. 박물관을 못 본 대신, 우리는 광장 옆 제주 해녀 항일운동 기념 공원을 거닐고, 공원의 가장자리에 우뚝이 자리 잡은 기념탑에 올라 절하였다.

 

여기 기념탑은 구좌, 성산, 우도 해녀 17천여 명이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그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후손들의 뜻을 모아 세운 탑이라 적혀있다. 굳센 이름, 선각의 이름, 제주의 상징인 그 이름, <제주 해녀>.

 

지금은 젊은 후계자가 드물다고 하니 그 맥이 끊어지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소중한 문화재로 길이 보존시켜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있을 것이다.

 

제주 올레 20코스는 바람의 섬을 상징하는 풍차의 길이요, 많은 삶을 품은 마을 올레의 길이요, 들판다운 들을 품은 벵듸의 길이요, 양식 어장이 밀집한 수산자원의 길이요, 연인들이 홀가분하게 드라이브하는 길이며, 제주의 상징인 해녀의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이 코스는 길을 잃고 한 시간을 헤맨 교훈의 올레길이요, 망망한 동해를 바라보며 중년 부부가 발맞추며 걸었던 추억의 길이 될 것이다. 이로써 제주 동북의 끝자락, 김녕포구에서 하도리까지 16.5km의 올레 20코스는 우리의 가슴에 또 하나의 작은 창문이 되어 새겨졌다.

 

다음 날 오전 우리는 귀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두 번째 여행 6일 간의 유()한 동안에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한라산 산신께 감사드리면서 옅은 구름 아래 가물거리는 제주의 자연을 뒤로하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4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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