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스럽게 더웠다. 9월 중순을 훌쩍 넘기고 있는데도 아침저녁으로는 반 겨울이고 낮 시간대는 한여름이다. 이럴 때는 불청객(감기)이 기승을 부리니 조심할 일이다. 특히나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도 훌쩍 넘긴 우리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요즘 후회스러운 생각이 가끔 든다. 한창나이에 왜 그렇게 몸을 엉망으로 관리했는지 말이다. 술은 마셨다 하면 통음(痛飮)이요, 또 담배는 왜 그렇게 당기는지, 술 마시면 담배는 술안주이니,…… 그 결과는 뇌로 올라가서 출혈이 생기고 반신불수로까지 이어지니(2016),
그뿐 아니다, 운전대도 잡기 못하는 주제에, 나들이 때마다 집사람에게 늘 상 고생만 시키니,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찰 일이다. 각설하고 옛 시절(2014)로 돌아가 보자.
▲이어지는 2차선 길은 달맞이 해변을 끼고 시원하게 달린다. 차도 달리고, 간혹 자전거도 달린다. 우리 앞에 젊은 여자 세 사람도 달리고 있었다.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길인데, 그런데,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마주 오는 젊은 길손에게 길을 불었다.
-이 길, 올레길 맞나요?
-그런가 봐요.
-올레 리본이 안 보이는데요?
-글쎄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쭉 걸어 세요.
-길~ 조오~ 찮아요!
길 좋다! 그래 맞습니다. 가다 보면 만나지겠지. 그 길이 어디 가겠어, 길은 어디서나 만나게 되어있지. <여보! 안 그래?> 내가 한 말이고 <그래 맞아요> 어부인이 하신 말씀이다. <갑시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말이다. 우리도 고우, 고우, 길을 달렸다. 저 앞에 걷는 여자들처럼, 힘차게 또 우아하게 달리고 걸었다.
길은 <재생에너지 홍보관>도 지나고, <해녀의 집>도 지나고, 걷는 중에도 높은 풍차는 계속하여 돌고, <해오름게스트하우스>라는 언덕 위의 하얀 집엔 관광객인지 주인인지가 한가롭게 찻잔을 기울이며 졸고 있고, 허물어진 석축도 지나고 있었다.
이어지는 발길 옆엔 해녀 두엇이 마당에서 해산물을 손질하는 <행원 잠수 탈의장>도 지나고, 어린 초병이 꼿꼿이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해양경찰 초소>도 지난다, 아직도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아 꼿꼿한 초병에게
-이 길이 올레길 맞나요?
물으니, 초병은 빳빳한 자세로 자신 있게 답하는데, 답은 동문서답이다.
-조금 가다 보면 올레 리본과 만나요. 가끔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습니다.
임금을 떨쳐버리고 걸었어야 했는데, 아~아 무~렴, 임금 탓하면 무엇하랴! 또 걷는다. 길은 <27번 가 편의점>도 지나고, <해양수산연구원>도 지나고, 제주 <윈드밀>이라는 모텔도 지나고, <행원수산>, <흥진수산>, <양지수산>도 지나고, <한동환해장성(漢東環海長城)>도 지나고, 아, 바닷길 풍경은 좋은데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있다.
그래도, 또 걷고 걷는다. 이어지는 길은 또 무슨 무슨 양어장을 수없이 지나서 <인>이라는 작은 카페를 지나고 나서야 올레 리본과 만날 수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올레 리본을 잃은 지도 한 시간도 넘어서였다. 앞서가든 세 여인은 <인> 카페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야 올레를 찾았고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올레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올레와 헤어지고 말았으니 할 말이 없고, 길을 걷는 사람들보다 올레 리본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했다.
믿음직한 리본을 따라 해안도로를 조금 걸으니, 간세가 우리를 반긴다. 남은 거리 5.5 Km, 길은 마을로 들어서고, 이어서 마늘밭도 지나고, 축사도 지난다.
길은 또 백사장이 참 아담한 해변을 지나는데, 대문도 마당도 없는 작은 집 하나, 중년의 남편은 작은 방문의 작은 자물쇠를 채우는데, 아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작은 차 앞에서 기다린다. 방금 길을 떠나려는 부부의 형색이 뚜렷하다.
새벽에 떠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겨울 오후에 한가하게 길을 나서는 소박한 풍경, 참 닮고 싶은 장면 하나다. 부부가 탄 자동차의 시동 소리를 뒤로하고 길을 걸으니 <계룡동회관>이 나온다. 회관은 마을의 중심이리라.
회관이 중심이라면 한참 후에 우리가 만난 동백꽃 붉게 핀 울타리 속의 작은 흙담집은 변두리이리라. 마을 길 속에 말 두 마리가 한가히 토닥거리며 먼 산을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누워서 쉬는 말은 본 일이 없다. 소는 누워서 되새김도 하건만, 소와 말은 같은 초식 동물이지만 정말 다름이 많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을 아시는가,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수영 실력은 말이 소보다 우월하지만, 홍수가 나면 말은 성질이 급해서 물에 순응하지 못하고, 거슬러 올라가려다 물에 휩쓸러 떠내려가다가 결국은 죽게 되고, 반대로 소는 홍수에 순응하여 강기슭으로 나가서 살게 된다더라. 소와 말은 다르면서 같은 점이 많다. 아무튼 소와 말은 연구 대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들이 서 있는 농가의 담을 끼고 걷는다. 이어지는 길은 마을을 벗어나니 평대마을<벵듸>라는 길로 이어진다. 돌과 잡풀로 우거진 넓은 들판이 <벵듸>라고 설명한 간세가 또 우리를 반긴다.
돌과 잡풀을 걷어낸 <벵듸> 길의 밭은 보통 규모가 아니다. 천 평 이상의 큼직큼직한 밭이다. <벵듸>에는 당근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당근밭만 있는 게 아니다. -4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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