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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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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9. 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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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카는 도시국가 시절에도 번화한 상업 중심지였으며, 가구점, 제화점, 옷 가게, 도살장, 시장, 홍등가와 술집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아고라에서 민회를 열거나 군사훈련을 할 때, 프닉스 언덕의 법정에 배심원으로 참여할 때, 파르테논과 니케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복을 빌 때, 시민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플라카에서 조달했다.

 

소크라테스가 맨발에 허름한 튜닉을 걸치고 배회하면서 사람들을 귀찮게 한 곳도 여기였다. 그는 가구를 보러 온 손님을 붙잡고 물었다. “좋은 가구를 구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그럼, 손님이 답한다. “솜씨 좋은 장인한테 주문을 넣지요” “그럼 좋은 정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대는 사람을 누가 좋아했겠는가.

 

그런데도 그리스 세계 전역에서 부잣집 청년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으며, 플라톤과 크세노폰 같은 제자들은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의 언행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는 낮술을 마시기도 했고, 사창가에도 드나들었으며, 페리클레스 같은 유력자들이 자택에서 열었던 향연에 가서 좋은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다. 어디서든 고상한 철학 배틀을 벌이면서,

 

플라카의 번잡한 골목에서 그리스 사람들의 심성과 인생관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리스는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국토는 대한민국보다 약간 크지만 대부분 산과 언덕이고 넓은 평야는 거의 없다. 인구는 1천만 명 조금 넘는데 대부분 도시에 산다.

 

아테네도 아주 큰 도시는 아니다. 교외 지역을 포함한 아테네 광역시면적은 서울의 3분의 2 정도이고 인구는 300만 명쯤 되는데, 광역시 면적의 10%에 불과한 시내에 70만 명이 산다.

 

그리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유럽에서는 가난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정부가 국내총생산의 두 배에 육박한 대규모 국가 채무 존재를 회계 분식으로 장기간 숨겨온 사실이 밝혀진 2009년에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뒤로 실업률이 20%를 넘나드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해운업자를 비롯해 부자가 많지만,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해 만성적 재정 적자에 허덕인다. 그런데도 아테네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기색이 없었다. 모두가 조르바처럼 극단적으로 느긋하게 살지는 않겠지만, 악착같이 무언가 해보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었다.

 

한국 같으면 누군가 틀림없이 플라카 초입에 튜닉과 가죽 샌들 대여점을 냈을 것이다. 서울 서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경주 대릉원의 한복 대여점처럼,

 

그리고 시 정부는 아마도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소크라테스 복장의 문화해설사를 투입해 지나가는 관광객을 붙들고 좋은 구두를 구하려면 어떻게 하슈?’ 따위의 질문을 던지게 했을 것이다. 분명 대박이 날 것 같은데 플라카에는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39~40쪽 인용, 각설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흰 모래 해변을 지나니 길은 잔디 위로 이어진다. 잔디 위를 걷는 발이니 편안함은 불문가지라. 길의 이름이 궁금하여 간세를 보니 <태역 길>이다. <태역>은 잔디라는 뜻이라니 알만하다. 간세는 역시 친절도 하다. 만약 이런 친절한 간세가 없었다면 걷는 감흥이 있겠는가, 고맙다 올레 간세야.

 

간세를 뒤로하고 검푸른 바다를 보면서 걷는다. 잔디 길이 끝나니, 바위와 돌들이 뒤섞인 자갈길로 이어진다. 걷던 길을 멈추고 오든 길은 돌아보니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눈부시고, 바다에는 높은 풍차 두 개가 의연히 돌고 있다. 참 한가하고 편안한 풍경이다.

 

길은 풍차 아래를 걷고 듬성듬성한 상록의 관목들을 지나서 해안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과 함께 컨테이너 건물 옆으로 지나고 있다. 건물의 간판을 보니 <한국에너지 기술연구원>이다. 아마도 풍력발전을 비롯한 전기와 에너지에 대한 연구소이리라. 많은 연구가 있어 부족한 전력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술연구원>을 지나자 길은 월정리로 이어진다. 잠시 밭담 길과 마을 길을 걸으니 노인복지회관 하나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회관 앞에는 서너 대의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주차된 것으로 보아 노인들이 내기 장기나 고스톱을 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지만, 우리는 궁금증만 품은 채 길만 걷는다. 4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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